화요일, 4월 21, 2015

이리가면







1.


오랜만의 보름장에 양반이건 평민이건 할것없이 웃음꽃이 가득했다. 특히 오늘은 마을에서 가장 장수하고 계신 김대감의 회갑연이 있는 날이라, 평민이나 거지나 그 댁 대문에만 가면 떡한조각 술한바가지 나눠주는 훈훈한 인정이 마을전체를 들뜨게 만들었다. 김대감네 외손자와 어릴적부터 친분이 두둑한 도씨네 둘째아들 경수도 점심이 되기 전부터 선물꾸러미를 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저명한 고관대작들이 모일테니 행색에도 소홀할수없어 아껴두었던 은은한 연분홍도포를 두르고 김대감댁으로 걷는데, 지나가던 여인네들이 이리수근 저리수근 소근소근 힐끗힐끗. 왠만한 여인보다 출중한 이목구비에 단아하게 갓을 쓴, 목련 같은 도경수도령에게 눈이 쏠리는게 당연할터. 척 보아도 여염집규수인 어떤 여인은 머리끝까지 누르고 있던 장옷사이에서 자신의 면상이 다 드러나는 것도 모르고 멍하게 도경수도령을 쳐다보더랬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도도령은 척척 걸음을 걸어 벌써 김대감댁 대문 앞에 섰다. 그런데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 경수의 안색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아우가 있을까. 없다면 얼마를 본가에 돌아오고 있지 않는거지. 대체 어디서 뭘하고 다니길래 어른들에게 심려나 끼치고 다니는겐지. 등등의 걱정에 사로잡힌 것이다.


"도도련님! 어서오십시오~!"


화사한 홍색도포를 두른 경수를 단번에 발견한 수만이가 고개숙여 인사하고 그를 집안으로 들였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당을 한번 훑고는 수만이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아우는 들어왔는가."


"아니요. 아직입니다요. 그게 말입니다, 도도련님, 도련님께서 부,"


수만이 급하게 무언가를 말하려는데 몇 발자국 안떨어진 곳에서 경수를 알아보고 아우의 어머님께서 바삐 걸어오셨다. 수만이 눈치를 채고 얼른 뒤로 빠졌다.


"이게누구신가. 도도령 아니신가."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하지 못하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게 어디를 돌아다니는 지도 모르니 내 속이 말이 아니야."


"걱정마세요. 몇일 연락이 뜸하다가 바람처럼 나타나지 않습니까. 오늘은 일가에게 중요한 기념일이고 하니 조만간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그럼 다행이네만, 내가 아들하나 있다고 너무 오냐오냐해서 잘못키운 탓인지 매사 자기멋대로에 어르신 말은 듣지도 않으니...."


"어머님. 이 좋은 날 눈물을 보이시면 어찌하십니까. 걱정마세요. 꼭 들어올겝니다."


"그래, 그래야지. 아, 그래. 어서 어르신들께 인사를 해야지, 도도령."


"예. 그래야지요."


그러나, 해가지고 어둠이 내려서까지 아우는 본가에 나타나지 않았다. 잔치는 성대하게 잘 치뤄졌으나 아우의 부모님들은 상심하셨다. 경수 저도 양반의 아들인 동시에 나라의 백성으로 아우의 심정을 모르지 않지만 그런다고 난국이 타계되는 것은 아니거늘 어찌 젊은 혈기만 믿고 자꾸 활개를 치는지 답답할 노릇이었다. 다음날, 무언가 그에 대한 정보가 있나 해서 책방가려고 저작거리를 걷고있던 경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게다가 너무 생각에 집중한 나머지 옆에 지나가던 노비들의 대화를 못들을 뻔했다.


"그거 들었어? 어제 유대감네가 도둑을 맞았다는 거 말이야."


"그래? 거참 잘됐군! 돈도 안주고 사람만 부려먹는 유대감이 털려야지, 암!"


"예끼! 그러다 누가들어!"


"들으라고 해! 있는 것도 없는데 뭐가 두려워?! 아, 그리고 말이야, 관아에 행동대장이 왔다고 뒷소문이 돌아. 이번엔 작정을 하고 '이리가면'을 잡을 결심을 했나봐!"


이리가면 이라는 말에 경수가 어깨를 흠칫했다.


"그 행동대장이 누군데 이리가면을 잡겠다는 거야?"


"소문으로는 변뭐시기라는 놈인데 날쌔기가 날다람쥐 같다고 하더라고."


경수는 걸어가던 발을 멈추고 섰다. 그들이 지나가고 나서도 움직일수가 없었다. 변뭐시기라면 아마도 변백현 행동대장인데 세상에. 이번에야말로 큰일이 터졌다. 경수는 벗겨지지 말라고 서둘러 갓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엄하게 지키던 양반체면은 접어두고 권씨를 만나러 책방으로 내달린다.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 책방 안에는 마침 수만이가 권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수만이 반가워하며 경수가 미처 닫지못한 책방문을 닫아 자물쇠를 걸었다.


"도도련님. 큰일입니다. 이거보십시오."


권씨에게 인사를 할틈도 없이 수만이 종이를 내밀었다. 그 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내가 오늘밤 정대감집으로 출두를 할 것이니 목을 씻고 기다리거라. -이리가면-]


이리가면은 도적질 전에 한번도 미리 공고를 한적이 없다. 이 내용은 도적질만 하는 이리가면에게 부합되지 않는다. 목을 씻고 기다리라니. 살해라도 하겠다는 뜻 아닌가. 이건 누군가의 계략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이건 그의 글씨체도 아니다. 어제 집에 돌아오기 전에 아우가 부상을 입었다고 수만이에게서 들었는데 이렇게 안정적이고 당찬 필체가 나올리 없는 것이다.


"이게 어디에 붙은 것이냐."


경수가 수만이에게 물었다.


"온 마을에 다~ 붙었습니다요."


뒤이어 이번엔 권씨가 말을 잇는다.


"소문들으셨습니까? 이건 분명히 여우같은 변백현 행동대장의 머리에서 나온게 분명합니다. 알게모르게 마을사람들이 이리가면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큽니까. 도련님은 분명히 이게 계략이라는 것을 아셔도 나오실게 뻔합니다."


"....아우가 어디있는지 아는가."


경수의 질문에 수만이도 권씨도 고개를 저었다. 아는 이에게 피해가 갈까봐 남의 도움 없이 활동하는 성격이라 일러두지 않았던 게 뻔했다. 아우의 강직한 성격이 어디를 갈꼬. 그러하니, 이 긴박한 상황에도 세사람은 마을의 영웅에게 해줄수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름에 있다."


대학의 첫장 첫문을 백번 읽었다. 한번 읽고, 달이 밝아서 아우가 앞은 잘보이겠네 생각하고 또 한번 읽고, 큰일은 없을지 심려하고. 일부러 밖이 잘보이는 사랑방에 앉아 지나가던 아우가 혹시라도 보일까 똥줄타는 마음에 창문을 조금 열어놓았다. 얼기설기 엮인 가지들 사이로 어여쁜 달을 보겠다고 창문을 열어놓은 게 아닌데.... 오늘밤에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 절교라도 할 결심으로 초롱불에 의지해 책을 읽는다. 마음으로 다잡고 백한번째로 읽어보려 입을 여는데 부엉이도 울지않는 조용한 한밤에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형님...거기있소?"


힘겹게 내뱃는 저음에 경수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리의 방향을 급히 찾는데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검은 옷가지가 보였다. 지체없이 활짝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가자,


쪽마루에 아우가 쓰러지듯 앉아있는게 아닌가.


"종인아!"


숨이 넘어갈듯 불안정하고 검은 옷의 옆구리가 축축했다. 경수의 손에 아우의 피가 묻었다. 이럴때가아니다 싶어 주위를 휘휘둘러보고 누가 볼세라 얼른 부축해서 방안으로 들여다 놓았다. 들어자마자 가면부터 벗겼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찰싹 붙어 정말로 아파보였다. 그런데도 경수 저를 힐끔보고 웃는 못난 놈.


이리가면이 괜히 이리가면이 아니다. 이리의 두상을 한 가면을 쓰고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부도덕하게 이익을 챙긴 대감들의 재물을 약탈해 거지와 평민들에게 나누어준다하여 이리가면이라 불린다. 말이 좋아 정의로운 약탈자지 이건 사람이 할 일이 못된다. 해를 입을까 가족들에게 얼굴 한번 비치지도 못하고 따뜻한 밥은 먹지 못한채 관인에게 들키지않으려 어딘가에서 숨어 지내야 하는 신세라니. 게다가 이렇게 다치기라도 하면 제대로 찾아갈 의원도 없다. 하여, 매번 다칠 때마다 찾아오는 덕에 의료에는 마음이 없던 경수가 이젠 꽤나 능숙하게 응급처지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까까지는 땀을 뻘뻘 흘리더니 치료를 받고 비단침상에 눕고나니 좀 편안해졌는지 숨이 고르게 돌아왔다. 그런 아우를 물끄러미 내려보다못해 초롱불로 고개를 돌렸다.


"형님, 잘 지냈소?"


갈라지는 목소리로 종인이 물었다.


"..잘 지냈다."


"근데 어째 얼굴이 그러오. 오랜만에 동생이 왔는데 반겨주지도 않으시고..얼굴도 안뵈주시네."


"너는! 너는 어머님께서 얼마나 네 걱정을 하시는지 아느냐? 어째서 연통 한번 넣지를 않고 보름이 넘게 잠적을 할수가 있는게야? 양반집 자제라면 넌 싫어도 선비다. 선비의 도가 무엇이냐. 부모에게 예를 다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날 뛰고 다니는게야!"


"....형님. 물한바가지 있소?"


혀로 입술을 축이는 아우를 본 경수는 몰아치던 화를 누르려 일단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보니 깊은 상처를 치료하고 너무 화가나서 물 한모금도 주지 못했다. 경수는 일어나 밖의 우물에서 박에 다가 직접 물 한바가지를 떠왔다. 상체를 안아 일으키는데 오만상을 찡그리길래 '꼬시다, 이놈아' 라고 면박을 줘도 종인은 피식 웃기만 했다.


"천천히 마셔라. 좀 차가울게야."


꿀떡꿀떡 박의 물을 깨끗히 들이킨 종인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자리에 다시 눕히고 옆에 앉아있는데 문 밖에서 도련님 하고 누가부른다. 문을 열어보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몸종이 문 밖에 눌은밥과 반찬 몇 개를 놓고 갔다.


"눈치도 빠르네, 배고팠는데. 배에 구멍 뚫렸어도 밥은 먹어야지."


남의 속도 모르고 농담조로 말하는 아우를 째렸다.


"형님. 그거 알아? 처음 형님을 봤을때 그런 눈을 해서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나는 제대로 본 것이였다. 네 간이 소갈딱지만해서 그런거지."


경수가 다시 종인을 부축해 일으켜 앉혔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자기 몸 부숴가며 이 고생을 사서 하는게야, 이 놈아 하고 역정을 내고 싶은데 아기새처럼 밥을 받아먹는 아우를 보고있으니 마음이 심란했다.


"아, 그 연분홍 도포 말이오. 정말 잘어울리더이다."


"연분홍? 너 혹시 네 본가로 가는 날 봤었던게냐?"


"형님 얼굴이 보고싶어서 숨어서 봤지."


"그럼 아는 척을 했어야지, 이 놈아."


구박에도 종인이 말없이 피식웃고 만다. 눌은밥을 한입 받아먹더니 그제서야 하는 말이,


"거 옆에 핀 진달래보다 형님이 더 곱더이다."


"......"


"아플때는 형님이 보고싶은 걸 어쩌오. 이렇게라도 와야지, 안그러오?"









2.


권씨의 책방에 장물애비 이씨가 방문했다. 그는 여러 장물애비 중에서도 그림과 책을 전문으로 매매하여 거래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데 화가 변상벽의 진품을 하나 장만했다고 자랑을 하러 일부러 걸음 했다. 직접 그림까지 들고 방문 할 정도여서 무슨 그림인가 궁금했지만 권씨 자신은 그림에 문외한이라 보여준 그림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지 알지못했다. 책방주인이 그림보는 눈이 없다는 것 쯤은 이씨도 익히 알고 있었다. 본 목적은 도도령이였다. 권씨의 소개로 알게 된 도도령은 본인 스스로가 그림을 그릴 뿐만아니라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수준도 뛰어나 이씨를 놀라게 하기도 즐겁게 만들기도 했고 딱히 큰 범죄와 연유된 그림이 아니라면 구입도 하는, 이씨에게는 둘도 없는 손님이었다.


"자, 이거보십시오. 도나으리."


이씨가 펼친 그림은 장안에 정평이 자자한, 일명 변고양이라고 불리는 변상벽의 '모계영자도'였다. 비단에 수묵으로 그린 그림으로, 먹이를 문 어미닭과 모여든 병아리 그리고 그 위로 괴석과 찔레꽃이 있는 완벽한 구성의 명품을 실제로 보는 것만 해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도도령의 눈이 섬세한 그림에 꽂혀 평화롭운 미소를 띄웠다.


"참으로 따뜻한 그림이외다."


"이 어미닭을 그린 붓놀림하며 이거보십시오. 병아리들의 세밀한 표현하며 기가막힙니다."


"맞소. 그렇소. 소박하고 장대하지 않아 여인네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이오."


"...어째 반응이 시원 찮습니다, 나으리."


"아. 그것이. 둘도 없는 작품이긴 하나, 나 같은 사람은 가질 그림이 아니오."


그게 그럴것이 '모계영자도'와 같은 그림은 친정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아들딸낳고 행복하게 살으라고 쥐어줄 만한 그림이니, 아무리 날고 뛰는 변상벽의 그림인들 구입할 의도가 생기지 않음이 뻔했다.  이씨의 심중을 단번에 파악한 도도령이 단칼에 구입의사가 없음을 밝히니 그는 이만 접어야 한다는 걸 알고 그림을 거두어 긴 화통에 집어넣었다.


"혹시나 해서 왔더니 헛걸음 했나봅니다, 그려."


조심스럽게 비단을 넣는 장물애비의 손을 무심결에 보던 도도령의 눈길이 화통 안의 작은 종이에 걸렸다.


"그건 무엇이오?"


"이거 말이 십니까? 이게 작긴 한데...."


그가 꺼내보인 손만한 크기의 종이를 도도령은 받아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큰 눈의 흰자가 다 들어나 눈이 빠질 정도로 놀라 입이 다 벌어졌다.


"이 그림, 내가 사겠소."









술상은 단촐했다. 감자전 몇점과 포를 뜬 생선구이 정도에 막걸리를 술상에 놓고 변백현대장과 오세훈사또가 초저녁부터 마주 앉았다. 둘은 관직에 오르기 전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서로 다른 지역에 근무 하다보니 소원했었는데 변대장에 오사또 관할지역으로 단기부임을 하는 바람에 이렇게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좋은 술 많은데 하필 막걸리일게 뭐냐."


생선구이를 집어 먹으며 오사또가 투덜거렸다.


"좋은 일이 생겨야 좋은 술을 마시지, 이사람아. 다 잡은 호랑이를 놓쳤으니 이 정도의 술상도 나에게는 감지덕지야."


콸콸 쏟아넣은 막걸리를 시원하게 넘긴 변대장은 심기가 불편한 낮빛이 었다. 자신이 이 곳으로 부임을 한 목적인 이리가면을 눈 앞에서 놓쳤으니 술을 마시지 않고는 못배기겠는데 거하게 차려먹을 체면이 안서 어쩔수없이 조촐할수밖에 없었다. 얼른 잡아서 관아의 옥에 처넣어야 답답한 가슴이 시원하게 뚫릴 것 같았다.


"이리가면이 사람잡는구만."


태평하게 웃는 오사또를 보는 변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보시게. 지금 웃음이 나오나? 그 놈을 잡으려고 내가 뿌린 사람이 얼만데! 거처를 알아내려고 한달 전부터 거지들을 매수한 것도 모자라서 혹시나 도적질한 물건을 어디 내놓을까해서 장물애비들도 매수했네. 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어. 그 놈의 얼굴을 봤다는 이도 없어!! 보통 머리가 좋은 놈이 아니야. 대체 그 많은 재물을 다 어디로 빼돌린 건지, 원!"


"돈있는 대감집들만 털어대니 민심이 도울수밖에. 내 맘을 알아주는데 그 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는게 사람 마음이지."


"오사또!"


변대장이 쾅!하고 술상을 내리쳤다. 오사또는 그런 벗에게 진정하라며 빈 술잔에 멀건 막걸리를 가득 부어주었다.


"이보게, 친구. 자네는 알지않는가. 왜 이 마을에 이리가면이 나타났는지 말일세. 정세가 급박하게 변하고 긴장하는 벼슬아치들 탓에 서민들이 바쳐야하는 조공이 배로 늘었네. 없는 살림이 더 없어지게 되어 도적들은 늘어가고 빈익빈부익부는 심화되어가고있어. 내 말은, 그를 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말일세. 나도 관직에 몸담는 사람이라 어쩔수없이 잡으려하는 거지, 내가 만약 길에서 동냥이나 하는 거지였다면 아마 그를 잡으려는 자네를 미워했을게야."


"그렇다고 도적질이 정당화 될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금상의 명을 받고 온 몸이네. 내 주인의 명은 바로 나의 의지야. 그를 반드시 포획할것이네. 그를 필두로 이 마을의 썪은 관리구조를 청명화 시키겠어!"


다시한번 술잔을 깨끗히 비운 변대장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인쇄기술을 임금이 독점하고 도서편찬을 나라에서 관리하는 방침 덕에 책을 하나 사면서도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하는게 현실이었다. 심지어 이 땅의 남자라면 꼭 알아둬야 하는 대학과 중용과 같은 얇고 작은 책도 논 세마지기에서 네마마지기 정도의 높은 가격에 팔린다. 이러니 서민들은 살아생전 구경도 못한다. 책이란 건 하나의 권력이며 권위의 상징이다. 그러니 소위 양반이라는 권력계층들은 서민들이 글을 깨우치는 것에 민감할수 밖에 없다. 자꾸 숨기고 감싸도니 세상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평민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왜 사는지도 모른채 목숨이 붙어있으니 먹고 싼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 말은 예나 지금이나 뜻하는 바가 다를게 없다. 도도령도 그에 격하게 동의 하는 선비중 하나였다. 알기에 없는게 무엇인지 안다. 깨우쳐 아니까 집에서 한 발만 나가도 만나는 거지에게 동정하게 된다. 이런 도도령의 마음을 백분 이해하는 게 김종인 아우였다.
천성이 바르고 명명한 아우는 청렴결백한 나라에서 살고싶어한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든 나라라는 거대한 조직은 그렇지 못할때가 더 많다. 더러움을 보고 젊은 혈기에 미치지 못해 몸을 혹사하는 아우의 행동은 결국 도도령의 마음의 심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 사는가. 이 나라 조선 아닌가. 관직의 나라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그 중심을 뚫고 앉아 주어진 벼슬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그토록 과거를 치르라고 귀에 딱지가 생기게 말을 해도 아우는 귀신 싸나락 까먹는 소리로만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린다.


다행이도 몇일 전 본가로 아우가 돌아왔다는 전갈을 수만이에게서 받았다. 대감과 어머님께 호되게 꾸짖음을 듣고 집안에서 자중하고 있다했다. 아마도 위험한 고비는 넘기고 본가에 잠깐 돌아간 것일게지 싶었다. 괴씸한 것 같으니라고. 그러면서 수만이에게 연통하나 보내지 않다니. 커다랗게 한숨을 쉬고 눈 앞의 손바닥만한 그림을 보던 경수가 흰종이와 붓을 꺼내들었다.


'아우 보거라.
네가 본가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다.
몸조리 잘하거라.'


짧게 편지를 쓰고 그림을 동봉하여 몸종에게 전해달라 부탁했다.









형님의 몸종이 연통을 보냈다며 수만이가 방으로 찾아왔다. 곱게 접혀진 연통을 손에 들고 방문을 닫았다. 벌써부터 종인의 입술이 곡선을 그리며 오른다. 자리에 앉아 헛기침을 한번하고 펴보니 편지와 그림이 하나 들어있었다. 형님다운 짧은 내용을 읽고나서 이번엔 그림을 보았는데 그림도 그림이거니와 왼편에 쓰여진 내용에 종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게 두마리가 갈대꽃을 꼭 붙들고 있는 단원 김홍도의 해탐노화도. 갈대꽃(로)은 려(고기)와 발음이 같아 과거에 붙으면 임금이 주시는 상 인, 고기를 갈대꽃으로 표현하고, 게딱지를 한문으로 하면 '갑'이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 갑은 첫번째에 위치하니, 형님이 하고싶은 말씀을 예측하건데, 과거를 봐서 소과(작은게)와 대과(큰게)에 모두 장원급제 하거라 이 말 아닌가.


시험을 치루는 사람도 아닌 종인 저에게 이 그림을 주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귀에 물집이 생기도록 들은 그 말. 시험을 치루어라. 그 말을 또 해봐야 듣지 않을테고 자신도 입이 아프니 이젠 그림으로 회유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게 뭔가. 그림에 쓰여진 '해룡왕처야횡행'. '바다 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 야 옆으로 걷는다.' 라니. 장원급제 해서 관직에 오르더라도 뜻을 버리지말고 소신있게 살으라는 말 아닌가. 어디서 단원 김홍도의 그림을 구하셨는지 몰라도 참으로 멋진 그림으로 격조있게 설득하는 모양새에서 어찌나 형님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지, 종인은 기가차서 고개를 저었다.


"형님. 저는 형님 때문에 못살겠습니다."









평소 경수는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밤달이 밝다. 구름사이에서 보일랑 말랑 하는데도 훤하게 밝혀주니 잠이 올리가 없다. 간단한 술상을 앞에 두고 자작하는데 혼자서 하는 술이 맛이 좋을리가 있나. 한숨을 쉬고 한잔하고 나니 술맛이 다 떨어졌다.


"그렇게 한숨을 쉬니 술맛이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


어디서 온지도 모를 종인이 열어놓은 창문을 잡고 불쑥 방안으로 들어왔다. 깜짝놀란 경수가 얼어 가만히 있으니 앞에 털썩 앉은 종인이 경수의 손에서 잔을 거두어 술을 들이켰다.


"캬~! 좋다!"


"너 어디서 들어온게냐?"


"담넘어들어왔지."


"도포차림으로 담을 넘다니 제정신이냐?"


"뭐 어떻소. 아무도 안보는 밤인데."


젓가락을 집어 전을 입에 넣은 종인이 경수를 보고 웃었다.


"몸은 좀 괜찮은게냐?"


"많이 좋아졌지. 형님 덕에. 형님은 의원을 해야하지 싶소."


"농말거라. 다 너때문에 생긴 잔기술이야. 내 연통은 본게냐?"


"봤으니 왔잖소." 라며 쓰고 있던 갓을 바닥에 내려놓은 종인은 이제 버선도 벗어 발이 드러났다.


답답한 걸 싫어하는 아우는 편한 경수 저의 앞에서만 이런 꼴이 되곤했다.



"그래. 생각은 해보았느냐?"


"조건이 있소, 형님."


"뭔지 말해봐."


"형님도 과거를 보시오. 나는 형님이 동반 하는 과거시험장이 아니면 발도 딪지 않을 생각이오."


"....종인아."


"형님. 형님은 내가 얼마나 관료들을 경멸하는지 알지? 노론, 소론? 그런 똥돼지들 사이에서 살려면 꽃하나는 쥐어줘야하겠다 하는 마음은 안드오? 내가 만약에 장원급제 하면,"


"아니. 너 정도의 학식이면 반드시 소과 대과 모두 장원급제 할수있다."


"내말들으시오, 형님. 그러니까 내가 형님 말을 듣고 시험을 봐서 급제하면 더이상 가면은 쓰지 못할테니 그건 형님이 원하는 나 아니오. 하라는대로 시키는대로 다 할테니,"


종인은 말을 멈추고 연속해서 술 세잔을 더 들이킨후, 취기가 흥건한 입술을 연다.


"내 옆에 있으라 말하지 않소."


도가네 경수도령이 아직도 과거를 보지 않은 연유는 배움이 부족해서도 출세가 싫어서도 아니다. 과거를 보지 않으면 집안이 아무리 좋아도 경수와 혼인을 맺고 싶어하는 벼슬아치 집안이 없기 때문이다. 양반가 처자들이 경수 때문에 몸이 달아도 부모님이 거부하면 성사되기 힘든 일. 혼인이라는 건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니 가능한 도피다. 경수가 혼인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는 제 몸을 돌보지 않는 아우 때문이고, 아우는. 아우는....


"내 옆에 있기 싫으면 나도 어쩔수없고."


승부를 띄운 종인의 진지한 말투와 시선을 피하며 경수는 불안한 숨만 내쉬었다.


"......"


"그렇게 계속 아무말도 안할거요?"


"......"


"그래, 어디 닭이 울때까지 취해봅시다, 형님."






fin




댓글 1개:

  1. 앜ㅋㅋ수만이에서 빵터졋어여ㅜㅜㅋㅋ홍길동같은 존재군요 이리가면이..경수가 많이 걱정하겟어여 진짜ㅜㅜ다치고들어오는 경우가 빈번하니ㅠㅋ레드님이 배경조사 굉장히 철저하게 하신거같아요 개인적으로 사극은 엄청난 배경지식을 습득해야 쓰는 장르라고 생각해서요 물론 제가 글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일단 말투부터가 달라야하니깐(?? 마지막대사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넘 잘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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