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4월 21, 2015
도대리
"신입사원 환영회식에 도대리가 빠지면 쓰나! 노래하면 도대리지! 도대리!!"
경수를 애타게 찾는 부장님의 술취한 손짓은 한두번이 아니였다. 회식만 하면 도대리의 노래를 듣겠다며 적당히 빠져줘야할 미덕도 잊는다. 옆에서 따라주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경수의 노랫소리에 빠져드는 회식자리 풍경은 흔했다. 그 덕에 회식만 한다고 하면 오늘 할머님 회갑잔치네, 아이가 아프네, 누나가 출산을 했네 등등의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내는 직원이 한둘이 아니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오늘은 무조건 전원참석이라는 불호령이 떨어젔다. 말단부터 시작해서 20명의 남녀직원이 고깃집부터 시작해서 카라오케까지 서울밤의 네온사이로 우르르 몰려다닐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달큰하게 취한 부장님 앞에서 약 한시간 동안 트로트메들리를 시전하고 있는 경수의 표정은 무언가,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는 자의 포기가 보였다. 그렇지만 이제 슬슬 목도 아프고 집에 가고 싶다. 부장님 옆에 앉은 여자직원에게 흰자를 부라리며 술 더 먹이라는 그들만의 암호를 보냈다.
"부장님~! 또 뭐 불러드릴까요? 찔레꽃? 마포종점? 땡벌?"
마이크에 대고 원하는 곡을 선택하라고 다그치는데 타이밍 좋게 부장님이 옆으로 픽 쓰러졌다. 도대리와 주위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집에 가는구나.
"도대리야~!! 뇌~가 너 지~~인짜 젛아하는 거 아르지?!"
"네. 부장님. 알죠. 머리 조심하세요."
부장님의 벗겨진 머리를 택시 안으로 사정없이 구겨넣은 후, 기사님께 잘부탁한다며 제발 좀 빨리꺼져 달라는 의미로 6만원을 꺼내 택시기사님께 드렸다. 떠나는 택시 뒤꽁무니를 보지도 않고 뒤돌아 길게 한숨을 한번 더 내뺐다. 다른 직원들은 이미 집으로 귀가한 상태. 목도 칼칼하고 피곤하고. 젠장. 부장님 때문에 밥도 술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회식이 즐거울리 없다.
포장마차가서 혼자 달려야지.
"도대리님. 어디가세요?"
귀가 한 줄 알았던 김종인 말단직원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옆에 서 있었다. 경수가 깜짝놀라서 흠칫했다. 뭐야. 이새끼. 무섭게. 어디서 잠복했다가 나타난거야?
"집에 안갔어? 김사원? 어디있다가 나타난거야, 깜짝 놀랐잖아."
"술깨려고 아까부터 저기 벤치에 앉아있었어요. 이제 집에 가시는 거에요?"
"아, 피곤해서 집 앞에서 혼자 한잔하려고."
"저도 가도 돼요?"
때로 혼자 마시는 술은 혼자 먹는 밥보다 더 외롭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니였다. 혼자 마시고 싶었다고. 그런데 이 다리길고 덩치만 산만한 말단직원님께서 왜 이렇게 들러 붙는지, 그런 주제에 말이 많지않아서 요상하게 귀찮지 않고 편했다. 암튼 이상한 놈.
김종인이 첫출근 했던 날, 옥상에서 쪽담배를 태우는 경수 옆에 쓰윽와서는 라이트 있냐고 물었던게 기억났다. 그대로 별말없이 옆에서 담배를 피더니 인사를 하고 먼저 옥상을 내려가는게 아닌가.
출구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헛웃음이 나서 피식 웃었더랬다. 뭐, 세상엔 여러사람이 있으니까 이런 놈도 있겠지. 계란말이와 돼지수육을 앞에 두고 소주를 털어넣는 종인을 물끄러미보며 경수가 웃었다.
"왜 웃어요?"
"어? 아니야."
손에 쥔 소주잔에 종인이 자작하게 술을 채워준다. 그런 경수의 소주잔은 금새 바닥나고 또 채워주고. 암튼, 이상한 놈. 경수의 시선이 종인을 천천히 훑었다. 목에 걸린 아이디 카드가 말해주듯 말단직원인데 복도에 지나가면 젊은 부사장과 다른게 없는 포스를 내고, 여자직원들에게 엄청 매너있어서 인기가 날로 하늘로 치솟는다. 사실은 회장님 손자인데 사회경험 하려고 말단직원부터 들어온 거라는 소문이 도는데 그게 맞는지 아닌건지 알길은 없었다. 머릿속이 온통 김종인으로 채워지고 있을때, 종인이 경수의 손에 숟가락을 끼워주고 밥그릇을 앞에 놓아주었다. 언제 시킨건지 포장마차이모의 된장찌개도 놓여있었다.
"아까 밥도 제대로 못먹었죠? 드세요."
"어,어."
"먹으면서 들어요."
"어?"
밥을 입에 가득넣고 찌개를 뜨는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내가 원래는 부장부터 시작할수 있었거든요. 할아버지도 그런 줄 알고 계셨다구요. 근데 내가 첫눈에 반한 사람이 대리라는 거에요. 가까이 있으려면 차라리 말단부터 하는게 낫겠다 싶더라구요."
"...부장이 뭐? 너가 좋아하는 사람이 대리라고?"
"네. 대리. 도대리."
"......응, 도대리~.....도대리??"
회사에서 도가 붙는 대리는 도대리. 도경수대리 밖에 없다. 경수의 두 눈이 커져서 종인을 쳐다본다. 입에 물고 있던 밥알이 다 보이도록 벌어진 입에 미간을 찡그린 종인이 손을 뻣어 턱을 올려주었다.
"스무번 씹어요. 꼭꼭."
무의식 중에 고개를 끄덕인 경수가 밥알을 씹는데 머리가 텅비어버린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종인의 말대로 스무번 꼭꼭 씹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종인이 씨익 웃었다.
"이거 그린라이트 같은데...맞죠."
"어? 뭐가. 뭐가 그린라이튼데."
"모르면 말고. 말 안해줄거에요. 이거도 먹어요."
"어? 어."
김나는 밥위에 종인이 얹어준 계란말이 한 점이 먹음직스런 노란색으로 빛났다.
그래. 계란말이 맛있지. 먹어야지.
"잘 먹네."
소주를 자작해서 원샷한 종인이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뭔지 알수없어도 휘말려드는 기분이 든 경수는 계속해서 저를 훑는 시선이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사람이 밥먹는 거 첨보나, 왜 저렇게 뚫어지게 보나 싶은데 딴데보라고 하면 경수 본인이 더 민망해질것 같아 아무말도 못했다.
딱 기분좋을 만큼 취했고 배도 부르다. 아까까지만 해도 스트레스에 머리가 쪼개지는 줄 알았는데 이젠 사는게 이런거지 뭐 싶다. 뭐 특별한 거 하려고 일하는 거 아니고 일터에서 오는 작은 보람이나, 또 이렇게 퇴근후에 술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이게 하루하루 사는 거지 싶다.
인생하면 담배지. 게포장마차에거 나오자마자 자켓에서 담배갑을 찾아 하나 물었는데 그게 쏘옥 빠져 입술에서 멀어졌다. 경수의 인생의 낙을 가져가는 범인은 김종인말단직원님. 고개를 흔들더니 자기 입술에 끼웠다.
"도대리님, 담배피우지마요. 안어울려."
종인의 입술사이에서 삐져나온 담배연기가 밤공기로 흩어졌다. 연기 때문에 찡그린 종인의 얼굴표정이 멋있고 자시고를 떠나 이새끼가 어디서 대리님의 담배를!
"줘. 안내놔?"
"아, 진짜."
경수가 까치발을 들고 담배를 뺏으려 하는게 종인은 귀여워 미치겠는거다.
고개를 저으면서 담배를 입은 긴팔을 쭈욱 뻣어 하늘로 올린다.
토끼처럼 뛰어보라고.
fin
줄게 이것밖에 없다.
카디야 데뷔2주년 축하한다.
2YEARSWITHE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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