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4월 21, 2015

저 불러주세요







'내가 셀레브리티 정기구독 신청 하루때 응모해 본 건데 뽑힐 줄 몰랐어. 내가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못 갈거 같으니까 종인이 너가 대신 가라. 아깝잖아.'


손에 든 초청카드는 아기자기한 핑크색 바탕에 레이스무의로 펀치된 종이가 깔려 있고 그 위에 금색으로 '됴쌤의 쿠킹클래스에 당첨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됴쌤이라면 종인도 아는 유명한 쉐프였다. 일주일에 두번씩 아침방송에 나와서 10분 만에 만드는 아침식사 코너를 진행하는데 동시간대 아침 정보 프로 중에서도 발군의 시청률이 나온다고 인터넷 기사에 떠들썩했다. 발행 하는 요리책은 전부 베스트셀러에 올리기도 하고 가끔 식신원정이 어쩌고 하는 프로에도 나오는 대세 쉐프였다. 요즘 스타 쉐프는 실력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외모도 그만큼 수준을 윗돌아야 되는데 비주얼은 물론이요 인성까지 바르니 싫어 하는 사람이 없어 '요리사계의 유재석'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딱히 요리에 관심은 없었는데 어느날 누나가 보는 요리프로를 보다가 됴쌤이 괜찮다는 선입견을 가졌다. 대화해 본 적 없고 그 사람을 잘 모르니 선입견이라 해도 맞겠지 싶었다. 누나가 카드를 내민 순간,자신이 멋대로 만든 강아지 같은, 콕집어 말하면 말티즈 같은 이미지가 맞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받아들었다. 처음은 이렇게 심플했다.


디오 쿠킹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많은 여성 응모자들이 형형색색의 에이프런을 두르고 자기들끼리 폰카를 찍으며 속닥이고 있었다. 남자는 한명도 없는 이런 상황이 상당히 불편하고 쑥쓰러웠던 종인이 쭈뻣거리며 문간에 서 있는데 노란 꽃무늬 에이프런을 맨 됴쌤이 생글거리며 걸어왔다. 그 덕에 여자 수강생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당연한 듯 얼굴이 더 빨게졌다.


"안녕하세요. 혹시 김혜인님이세요?"


"제 누나가 김혜인이고 저는 김종인인데요, 누나가 못 온다고 저보고 대신 가라고 해서 왔는데.."


"아~ 그러시구나. 들어오세요. 카드는 저 주시면 되요."


"아, 네. 여기."


"에이프런 가지고 오셨어요? 없으시면 제꺼 빌려드릴까요?"


"준비물이 있는지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일단 손 먼저 씼으시고 이거 두르세요. 오늘 혼자 청일점이시니까 오늘 하루 제 보조해보실래요?"


"네? 그...래야되나요?"


"아니, 싫으시면 괜찮아요. 근데 저기 여자들 뿐인데 괜찮으시겠어요?"


흰자위 가득한 눈알이 옆으로 돌아갔다. 여자만 스무명 넘게 들어찬 공간에 서 있는게 확실히 부담스럽긴 했다. 종인의 고개가 수줍게 끄덕여졌다.







쿠킹 클래스는 순조로웠다. 오늘의 주제인 크림 김치 스파게티를 만드는 수강생들은 평소 좋아하던 됴쌤과의 쿠킹을 즐거워 했고 동시에 새로온 김종인 보조도 좋아했다. 그들 중에는 됴쌤과 보조에게,


"두 분 커플 같아요! 잘어울려요!"라든가, "그거 사랑과 영혼에 나오는 장면 해줘요!" 라며 어디로 보나 덕스러운 말을 스스럼없이 던졌다. 그럴때마다 됴쌤은 눈을 흘기며 웃고 말았는데, 종인은 그런 도쌤의 표정에서 잠시 눈을 못 때다가 조리에 집중해야 했다. 스파게티를 삶는 동안 어떤 수강생이 갑자기 노래를 불러 달라고 외쳤다.


"됴쌤! 노래 듣고 싶어요! 노래 해 주세요!"


됴쌤은 몸집은 작아도 아주 울림이 좋은 목소리를 하고 있어서 마이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수업내용이 교실 전체에 잘 들렸다. 분명 노래를 부르면 멋드러질 거라 종인도 생각하던 참이였다.


"노래 잘 못하는데...진짜 불러요?"


"네!! 불러주세요!!"


"그럼, 나윤권의 기대 쪼금만 부를게요. 흠! 겁이나~ 강하지 못한 나~ 너 없인 무엇도 아닌 나~ 이 맘 속에 너 하나만 안고 알고 살아 온 날~ 자! 여러분! 스파게티 면 건지세요!!"


감질나게 치고 빠지는 식으로 두소절만 빼꼼히 보여준 됴쌤은 뭔가 부끄러운지 면을 건져서 올리브오일을 뿌리라고 지시했다. 폐에서 나오는 헛바람으로 쿡쿡 웃은 종인도 끝이 포크처럼 생긴 국자를 집어 들었다.


작은 후라이팬에 씻은 김치를 허브와 볶고 프레쉬크림을 섞은 소스를 스파게티 면 위에 조심스럽게 부었다. 그러고 나니 왠지 작품을 만든 거 같은 기분에 종인의 입술이 찢어졌다. 그치만 처음 해 본 요리가 나름 만족스럽게 나왔는데 칭찬 해주는 사람이 없다. 꽃무늬 에이프런을 입은 됴쌤이 이리저리 다니며 수강생들에게 조언하고 돕는 모습을 따라 붙는 시선이 바삐 움직였다. 좁게 쳐진 어깨와 한품에 들어올 허리를 가진 됴쌤은 몇 살일까 그게 젤 궁금해졌다.
수업이 끝나서도 수강생들은 쿠킹 스튜디오를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됴쌤의 요리책에 싸인을 받고 사진까지 박고도 누구도 그의 옆을 뜨지 않고 재잘거렸다. 짜증나는 건, 자신은 홀로 남자라서 저 음기 가득한 여자사람 뭉텅이를 치고 들어 갈 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이였다.


"여러분! 오늘 강좌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생기면 꼭 다시 들어주세요!"


종인이 출구를 열려고 손을 가져 대는데 됴쌤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교실을 울렸다. 정갈한 말투와 차분한 목소리가 귀에 쏙 들어와 발이 철커덕 멈췄다. 그제서야 수강생들이 하나둘씩 아쉬운 걸음을 했다. 여자 셋만 모이면 접시 깨진다는 말도 있던데 스무명이 모였으니 더없이 시끌벅적 했던 곳이 문 닫은 식당처럼 조용해졌다. 창문 밖은 어둑어둑 해지고 오렌지색 석양빛이 드물게 남아있었다.


"안...가세요?"


아까보다 수백배는 더 벽면을 울리며 됴쌤의 소리가 감겼다. 종인은 한박자 쉬고 "아,가야죠."라고 읍조렸다. 누가봐도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의 반어법이였다. 몸의 어느 한구석도 움직이지 않고 문에 기대어 서서 애꿎은 시멘트 바닥만 운동화로 치덕였다.


"저기...됴쌤 몇 살이에요?"


"네? 아, 저 23살이에요."


"23살이구나...저기, 그러니까, 그...정리 도와드릴까요?"


"거의 다들 하고 가셔서 괜찮은데...그...래주실래요?"


됴쌤의 눈이 휘어졌다. 둘은 식기구와 주방기구의 위치를 정리하고 바닥을 쓸었다. 종인이 대걸레를 들고와서 쓱쓱 밀었다. 됴쌤은 허리를 숙이고 열심히 닦고있는 남자의 넓다란 등을 보며 의자에 앉아있었다.


"근데 이런 잡일도 본인이 다 하시나봐요."


꿈틀거리는 그의 등이 말했다.


"네. 오늘 사실 보조가 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못 왔어요. 이 뒤에 스케줄이 없어서 오늘은 제가 하는 거에요."


"스케줄 없으면 뭐하세요?"


"레시피 계발하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똑같아요."


종인이 허리를 펴 뒤를 돌았다. 몸짓은 결연한데 오갈데없는 동공이 흔들리며 떨어졌다. 떨렸다.


"저..되게..잘 먹는데...."


"네?"


"레시피 계발 하실 때 저 부르시면 잘 먹을 수 있어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물음표를 단 얼굴은 점점 멍하게 변했다. 잡고 있던 대걸레를 끌고 됴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 앉은 종인이 고개를 들었다.


"저 불러주세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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