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4월 21, 2015

청게 1. 2.








1.


갈라진 엉덩이턱을 교과서에 대고 눈을 감은 짝궁의 감긴 속눈썹이 봄바람 결에 흔들린다. 덩달아 윤기나는 검정머리카락도 살랑였다. 열린 창문 옆자리에 앉은 키가 큰 짝의 눈꺼풀은 4교시가 거의 끝나갈 시간에도 사뿐히 닫혀있다. 귀가 따가운 수업 종료 울림소리가 들려야 종이짝 두께만한 실눈을 뜨고 잠에 취한 한숨을 흘리며 일어난다.


"잘잤어?"


내 짝궁은 내 동생. 새로운 어머니가 대려오신 한살차이의 남동생이다. 아버지는 내가 한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걱정된다며 날 같은 학년으로 초등학교에 재입학 시켜버렸다. 그 덕에 초등학교를 7년이나 다녀야 했지만 싫지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귀여운 동생이 생겼으니까.


"어..."


자고 일어난 저음으로 나른하게 대답한 종인이는 부은 눈으로 교과서를 가방에 쑤셔넣었다. 자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오늘이 토요일인 건 알고있었던 모양이 었다. 찌푸린 얼굴로 집에 갈 채비를 하는 걸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도 가방을 챙겨 담임선생님이 종례를 해주기만 기다린다.


사방을 튀며 치이익 하는 시원한 사이다캔 따는 소리가 지나가는 자동차소리에 섞였다. 캔을 내미는 종인이의 손에 사이다 방울이 맺혔다. 손가락을 쪽 빨고는 다시 내민다. 나는 사이다를 받아들고 한모금 넘겼다. 차가운 탄산이 입 안에서 펑펑터진다. 뭔가 덥다. 여름이 시작되려하나보다. 오른쪽 볼이 따가워 무심코 옆을 올려보았다. 내가 입술에 캔구멍을 끼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보던 종인이가 자기 사이다를 들이켰다.







별말없이 둘이서 걸어가는 하교길. 담장에 핀 개나리와 벚꽃이 이러저리 흔들리는게 예뻐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데 콧구멍에 손가락이 쑥 꽂힌다. 이런식으로 장난치는 게 한두번도 아니고 눈알만 굴려서 옆을 보니까 종인이가 씨익웃는다.


"드러워, 임마."


햇빛에 그을린 손을 툭쳐서 내치고 복수심에 종인이의 복근을 꼬집꼬집 했다. 두 발을 통통튀며 찡그리고 웃는건지 아픈건지 모를 표정을 하며 온몸을 비틀어보였다. 위아래로 팔딱이는 종인이의 머리카락이 애 같아보인다. 웃음이 절로난다.


"형. 일로와."


갑자기 종인이가 내 팔을 잡고 담장 쪽으로 끌었다.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너무 근접해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이렇게 컸지. 넓어진 어깨를 슬쩍올려보는데 기분상 나보다 십몇센치는 더 커보인다. 내가 어릴때부터 작긴 했지만 종인이는 비정상적으로 빨리 성숙했다. 골격도 다부지고 다리도 길고. 아. 뭔가 형인데 형같지 않은 이 기분은 뭐지. 들고있던 캔을 비워내며 근본부터 해결할수없는 허탈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일있어?"


탐색하듯 관찰하는 종인이의 두 눈. 말없이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 눈이 익숙해질만도 한데 너무 오랜시간 응시하면 진짜 내 몸에 구멍이 뚫릴 것 같다.


"아니."


동생인데 가끔 형 같은 거 반칙이다, 김종인.




fin




2.


코를 찌르는 땀냄새, 일년은 족히 빨지 않은 듯 때가 꼬질꼬질한 실내화, 꾸깃한 교복자켓을 입고 있어도 그 애는 하나도 더러워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모든게 열정으로 뭉퉁그려졌다. 채워지지 않은 셔츠의 단추사이로 한여름이 묻은 땀이 흘러 수돗가의 차가운 물로 내려보낼때나, 머리에도 흠뻑 적셔 거칠게 흔들어 털어낼때는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때로 친구들과 수도를 막아 서로를 물에 젖은 생쥐꼴로 만들어 웃었다. 그 애의 선풍기바람 만큼이나 시원한 웃음은 경수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2학년 1반 14번 김종인. 3학년 1반 12번 도경수. 그래도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저기요, 이거."


목소리와 손이 머리 위에서 내려왔다. 큰 눈이 번쩍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고3은 바쁘다. 꼭 몸이 바빠 시간이 없는 것 보단 심적으로 여유가 없다. 그러나 경수는 그와중에도 고고하게 독서를 즐겼다. 평소 도서관에 오는 습관이 들어버린 저 자신에게 이토록 감사할수 없었다.


"이거 그 쪽 꺼 맞아요?"


그 쪽. 경수는 이름을 알아도 그 애는 모른다. 책장 사이에서 쪼그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똑바로 섰다키차이가 날 줄 알았지만 두뼘은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들고있던 책을 꼬옥 쥐고 그 애가 내민 펜을 건내받았다. 펜이 손으로 굴러오다 닿은 그 애의 손 끝은 뜨거웠다.


"네. 맞아요. 고맙습니다."


긴장하지 않고 웃으려 노력했는데 결실이 있었는지 알수없었다. 이제까지 경수가 훔쳐보던 굵은 쌍꺼풀이 지척에서 깜박이는 건 무언가 황홀한 광경이였다. 도서관 창문 틈으로 들어온 미풍이 그 애의 속눈썹을 떨리듯 날려냈다. 할수만 있다면 만져보고 싶기까지 했다.


펜만 건내주고 지나쳐 간 뒷모습에 경수의 시선이 밀착했다. 눈알이 굴러 친구들 사이에서 노닥거리는 입술에 안착했다. 경수는 책사이의 눈길에 손가락을 싣어보냈다. 다행이도 도서관 안의 바람이 도와주었다. 볼록한 이마, 두꺼운 코, 도톰한 입술, 갈라진 턱을 쓸고 목선도 만져보았다. 가슴이 조용히 두근거렸다. 깜박이는 큰 눈과 박동을 같이 하는 심장이 갈수록 빠르게 뛰었다. 경수는 휙 등을 돌렸다.


"후....."


절대 한숨이 아니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부터 들이쉬어 길게 뱃어내는 이것은 긴장의 연장선이었다. 안정적으로 나오지 못하는 들숨날숨을 고르려 무단히도 애를 썼다.


"저기요."


어? 재빠르게 휙 둘러보아도 경수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뒤돌아봐요."


갈곳을 잃은 동공이 흔들렸다. 경수는 바다처럼 넓고 깊은 이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있었다.  머뭇거리며 몸을 돌렸다. 책장의 책들 뒤로 김종인 이라는 명찰이 눈에 띄었다. 멋대로 풀어진 셔츠와 굵은 목선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침을 삼키는지 목울대가 울라갔다 내려가며 어깨를 쭉 편다.


"3학년이죠? 이름 뭐에요?"


"..도..경수..요."


"도경수선배구나. 폰 줘봐요."


"네? 포온이요? 왜...아, 어떻게..."


"여기로요."


꽃혀진 책들 위에서 굵고 긴 손마디가 나왔다. 경수는 교복자켓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손가락에 끼웠다. 폰은 책장 넘어로 사라졌다. 얼마간의 기다림이 지나고 폰이 불쑥 등장했다. 손을 뻣어 폰을 잡는데 그 애의 손가락이 엉켰다. 염치도 없는지 마디사이에 엮었다 풀었다 끝으로 잡았다 장난한다. 톡톡치기도 하고 손톱으로 긁기도 한다. 그저 손가락인데 동작 하나하나에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간다. 저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반대편으로 손이 끌려갔다 풀려났다.
책이 가려져 얼굴을 보지 못하는게 다행이었다. 경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전화하면 받아요."


"네에..."


저장된 전번의 이름, '선배눈에닳아없어질후배'


"으아아아아아아!"


경수가 비명을 질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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