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5월 26, 2015

author's note 4













교수님 오피스에 방문을 할 때엔 언제나 하나의 목적이 있었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교수님은 나를 보자마자 커피를 권했지만 거절하고 소파에 앉았다. 로빈 교수님은 좀 피곤하셨는지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채워 맞은 편에 앉으셨다.


 "헨리 교수와 얘기를 해봤는데 말이네. 그는 일주일 뒤 총 교수회의에 이번 일을 이슈화시킬 생각을 피력했네. 아무래도 종인 군이 헨리 교수의 눈에 단단히 빗겨간 모양이더군. 아, 종인 군은 지금 어디 있나?"

 "집에서 자고 있어요. 계속 불안해하다가 잠들었어요. 왜 교수님을 구타했는지 물어봤지만, 말을 안 해요. 뭔가 아시는 거 있으세요?"

 "헨리 교수는 처음부터 종인 군이 이 학교에 입학하는 걸 반대했었지. 미카엘 김 선생님을 통해 알고 있겠지만 아스퍼거장애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제어할 수 없을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곤란해했어. 당연히 나도 그 점은 인지하고 있어서 종인 군의 보호자가 되기로 한 거네. 그래서 우리 학교에 받아들여진 거야. 그렇지만 자존심 높은 헨리 교수는 종인 군이 자신의 물리학 강의를 듣는 것 자체를 싫어하네. 모든 강의에 반론을 제기하기 때문이지. 언젠가 두개의 칠판을 가득매우고 그 뒤의 칠판마저 채운 엄청난 공식으로 많은 학생들 앞에서 헨리 교수를 당황시킨 적이 있네. 그 뒤로 그는 종인군은 벌레 보듯 싫어하지."


기나긴 이야기 끝에 겨우 커피 한 모금을 마신 교수님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전에도 말한 것 같지만 종인 군은 이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네. 에니그마 연구소도 그렇지만 여러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연락이 오고 있어. 사회성만 조금 좋아진다면 그들 중 한 곳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본인이 거부하는 것에 있지. 애써 이곳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네. 이런 문제까지 일으키면서 말이지. 그게 이번 학생회에서 큰 걸림돌이 될 거야. 그리고 종인 군은 싫다고만 표현하지 왜 인지 말하지 않아. 나에게도 단 한 번도 말을 해온 적이 없어. 발단은 알지만, 종국에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네."


한숨은 내가 먼저 쉬었다.


 "일단 총 교수회의에 이 안건이 붙여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네. 그러니까 경수 군은 종인 군이 안정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네. 교수님. 저,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교수님은 이렇게 곤란한 일이 생김에도 불구하고 왜 종인이를 사회화 시키려 하는 거죠?"
 "그것을 설명하려면 종인 군과 나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니 그건 이 사건이 마무리된 후에 느긋하게 하기로 하지. 그래도 되겠지? 경수군?"
 "아, 네. 교수님."


그랬다. 나는 이제 슬슬 로빈 교수님과 그의 첫 인연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 혼자 불안하게 서성거리는 나를 누가 보고 있다면, '정산 산란하니까 앉아있어!' 라고 호통을 칠지 몰랐다. 입 다물고 가만히 앉아있기는 내 특기였지만 엉덩이에 불이 붙은 원숭이처럼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같은 문을 백 번은 넘게 쳐다봤다. 초조했다. 쳐다보는 문 안에서는 그와 더불어 증인 그리고, 여러 교수를 포함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벌써 두 시간 을 넘겼는데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몸을 떨구듯 몸을 앉혔다. 교수회의가 열리는 오피스 바로 옆 의자에 말이다.


교수회의는 사일 만에 열렸다. 그는 사일동안 일시정학 조치를 받아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나는 학교에 있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에 사건에 대해 다그쳐 물었지만, 끝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가 앉아서 밥 먹고 떠들고 책을 봤던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멍한 표정으로 숫자와 공식을 써내려갔다. 생각 같아서는 구겨진 종이와 연필을 빼앗아 들고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게 하겠다고 윽박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엉덩이가 저리도록 부엌 창문틀에 앉아 있다 문득 그가 아보카도와 다를 바 없다 느꼈다. 칼집을 내었을 때 어느 정도까지는 물러서 잘 베어낼 수 있지만, 씨에 다다르면 아무리 비집고 들어가려 애써도 노력은 튕겨 오른다. 결정적인 때에는 언제나 이 모양이었다. 그의 (정확히 그 장애가 아니라고는 하나) 병명도 알고 약간의 공부를 했음에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거의 피곤에 절은 상태로 힘들게 눈을 감았다. 어제의 대화가 머리 속을 휘집어 놓았다.


'코코아 마실래?'


음악조차 흐르지 않는 움직임 없는 공기에 질린 나머지 내가 물었었다. 실은 나의 물음은 이것 뿐 만이 아니었다. 앞서 말 했지만 거두지 못 할 의문에 자꾸 그 사건에 관한 일을 틈만 있으면 물어보았다. 그가 나쁜 일을 하지 않은 건 알았고 교수회의까지 잊으려고 했는데, 나라는 사람으로써 무리 였다. 그리고, 끝끝내 그의 침묵에 질렸다.


'이제 안 물어 볼게. 그러니까, 마실래?'
 '...으..응.'


적어도 내 말을 믿어는 주는구나. 들리지 않게 한숨을 터트리며 안심했다. 진한 코코아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옆에 앉았다. 그의 상체가 들리더니 조금 비켜 머뭇거렸다. 초딩도 아니고 이렇게 적나라하게 삐졌다는 표현을 꼭 해야 하나 싶다가도 그 라서 밑도 끝도 없이 이해가 된다. 나는 그의 주먹 쥔 손을 잡아 억지로 손가락을 펴, 머그잔 손잡이를 끼워주었다.


 '맛있게 먹고 내일 교수회의에서 떨지 말고 잘 말해.'


그는 코코아를 깨끗하게 비우고 소파에서 새우잠에 들었다. 비해, 어젯밤을 꼴딱 세운 나의 눈은 무겁고 흰자위에 핏줄이 섰다. 다행히 귀는 먹통이 아니어서 교수님들의 이야기와 증인으로 참석한 학생의 증언이 중간 중간 들려왔다.


 "그래서 헨리 교수님께서 죠에게 질문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제가 보기엔 무시하는 행동처럼 보였습니다."

 "그 뒤 상황도 말해보게, 로버트군."

 "헨리 교수님께서 죠가 쓰고 있던 연필과 종이를 다 거둬 가셨어요.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서 헨리 교수님의 배를 주먹으로 강타했습니다."

 "그런 행동을 일으킬 만한 발언을 헨리 교수가 했었나?"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몰아가시면 종인학생의 상태로는 자기 변론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종인 군의 장애를 익히 알면서 경솔하게 행동하신 헨리 교수님에게도 이 사건의 책임은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처음부터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부터 문제가 있어요. 재학할 명분이 없는데 무리해서 넣은 것 아닙니까. 그래놓고 문제가 생기면 교수의 책임이라 몰아가는 건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죠."

 "그렇다고 장애를 빌미로 반론의 여지도 주지 않고 몰아가는 건 교수로서 실격입니다."

 "종인 군이 헨리 교수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이상 선처는 불가능합니다. 장애가 있건 없건 학교의 학생은 모두 평등한 처분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저는 학생의 정학에 찬성합니다."

 "종인 학생의 입학은 다수결로 인정된 사안입니다. 당시 협조를 부탁했을 때 긍정적 반응을 보여주시고 이제 와서 일반학생들과 동등하게 대하시겠다는 말은 굉장히 모순입니다."

 "정학이 과하다는 의견이시라면 폭력행사의 정당한 이유를 포함한 반성문을 제출하고 봉사활동을 기준보다 두 배로 늘리는 것을 제안합니다."

 "거기에 정식 사과도 해야죠. 본인의 정식 사과가 없다면 이 학교의 학생으로서 행사한 폭력이 정당했다고 인식한다고 간주하고 학교의 취지에 부합되지 않으므로 정학 처분에 관한 회의를 진행 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발언의 반 정도는 동의했다. 전말이 어찌 되었든 교수에게 폭력을 행사한 행위는 사과해야 마땅하다. 여전히 그의 목소리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듣기 좋다던 목소리는 어디로 날아가서 돌아오고 있지 않는 것이었을까.








이 모든 것을 뛰어 넘어, 나는 오늘 사건을 계기로 만난 '백현'이라는 이름의 아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 전에 결과적으로 어떠한 처분이 그에게 내려졌는지 먼저 말을 해야 하겠다. 정학이 아닌 게 어디냐며 로빈 교수님은 안도 하셨지만 정작 김종인 본인에게 어떨지 알 수 없었다. 윌링턴대학은 정규 전공과목만큼이나 봉사활동이 학기 스코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점수의 비율을 높게 정한 학교인데 거기서 두 배라니. 학기 중, 170시간 가까이 봉사에 매달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할 시간이 현저히 부족한 나와 장애를 가진 그의 경우, 학교에서 추천하는 단체에 간접 재능기부로 봉사를 해왔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정해진 곳에 직접 방문해야 했다. 문제는 다른 이들처럼 활동적 봉사가 가능할지였다. 하지만 계속 학교 다니고 싶다면 할당된 시간을 꼭 채워야 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에 대한 상담을 하러 로빈 교수님의 오피스로 향했다.


 "아, 경수 군. 어서 들어 오게."


얼굴을 보자마자 방긋 웃는 교수님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걱정하셨던 그의 사건이 그나마 가벼운 축에 속하는 벌로 마무리 되어서인 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기 앉게."


교수님의 고갯짓이 가리킨 건 내가 지겹도록 말한 녹색 소파였다. 분명 편하게 아무 곳에나 앉으라는 뜻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의자는 나에게 나름 특별한 의미였기에 올 때마다 앉던 흰 소파에 궁둥이를 붙였다. 교수님은 손에 두 개의 노란 봉투를 들고 오셨고 소파 앞의 테이블에 올려두셨다.


 "이게 경수 군과 종인 군이 봉사를 나가게 될 곳에서 쓰일 서류들이야. 시간 있을 때 잘 읽어보고 가길 바라네. 뒤에 보면 한 아이에 관한 프로필이 있는데 그쪽에서 꼭 숙지해달라고 했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요즘 종인 군은 어떤가."


나도 모르게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어버렸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그와 나는 반성문 쓰기라는 엄청난 난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반성문은 기한이 없었으나 늦어질 경우 교수들에게 눈총을 받는 건 불 보듯 뻔했기에 가능한 한 빨리 제출해야 하는 데 그는 쓸 마음이 없어 보였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봉사를 나가기 전에 제출하고 싶지만, 지금까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꽉 막힐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자, 교수님이 작게 실소하셨다.


 "종인 군이 고집이 세지?"
 "네."


알만 하다는 표정에 나는 바로 긍정했다.


 "나도 그 녀석의 고집 때문에 많이 애를 먹었었지. 하지만 나보다 경수 군의 말을 잘 듣는다는 걸 알아주게. 우리 집에 있었을 때에는 굉장했어."
 "그랬을 거 같아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내가 매일 그와 생활 하며 부딪히고 있었으니까.


 "아, 그렇지. 저번에 우리가 얘기하던 거 말이야, 종인 군이 나와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이야기 말일세, 길어질지 모르니 여기서 나가서 캠퍼스 산책이라도 해보겠나?"
 "네. 좋아요.“


외투를 챙겨 든 교수님과 나는 뚜벅뚜벅 교정을 나왔다. 나오기 전에 학교 안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 했는데 2달러의 커피는 서늘한 기운을 녹여주는 역으로 만족해야했다. 그저 그런 커피 맛에 입을 쩝쩝거리는데 교수님이 물어오셨다. 


 "타지에서 학교생활 하기 힘들지 않나? 보통 영어권 학생이 아닐 경우에 수업내용을 알아듣기가 어렵다 하는데 말이야."


 "수업내용을 전부 레코딩해서 다시 듣는 건 여전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는 거 같아요."

 "그런 와중에 내가 종인 군을 맡기는 바람에 고생이 많겠군.“

"음... 솔직히 말해도 된다면 공부시간이 줄어든 건 좀 신경이 쓰이긴 하는 데 크게 불만은 없어요. 종인 이는 제가 지금까지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는 많이 달라서... 음... 소통하기 불편할 때가 있긴 하지만 편할 때도 있고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같이 있어서 싫지 않아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종인 군이 경수 군을 잘 따른다는 판단에 주위에 있어달라 했지만, 경수 군에게 너무 큰 짐을 안겨준 게 아닌 가 내심 걱정을 많이 했지. 내 욕심이 피해를 준다면 안 되니까 말이야.“


사람이 살면서 맺는 작고 큰 인간관계의 삐거덕거림은 사실 즐거움이다. 삶이 지속되면서 내 머릿속에는 세 개의 분리된 파일이 생겨났다. '잘 맞아', '안 맞아', '모르겠어' 라는 파일 안에는 수많은 인물이 끼워져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을 더 우선시한다거나 그런 건 없다. 나와 안 맞더라도 사람이며 맞아도 몰라도 사람이다. 이쪽에 끼웠다가 저쪽에 붙여봤다 하는 마음의 결정을 하면서 달달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싫은 느낌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걸 크게 보면 삶의 이벤트이며 해야 할 경험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보다 사회라는 놀이공원이 세워진 벌판이 즐거울 게 당연한 일. 그렇다면, 들어가서 만만한 메리 고 어라운드나 무서운 제트코스터를 타자. 이게 내 신조이니 그와의 관계는 천천히 넓고 깊게, 여태껏 사귀었던 누구보다 신중을 기해 즐거워지고 싶었다.


 "저는 공부도 종인 이랑 친구 하는 것도 다 즐거워요, 교수님.“
"경수 군이 좋아지려 하는 군.“
"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수줍게 커피를 홀짝였다. 교수님은 눈앞에 보이는 분수대 턱에 앉자 권하셨고 몇몇 학생들이 있는 틈에 섞여 앉았다. 날씨는 화창했고 하늘은 높았다. 약간 쌀쌀했지만 좋은 날씨였다. 날이 좋다며 커피를 들이켠 로빈 교수님께서 조금 무겁게 입을 여셨다.


 "내가 2년 전에 UCLA에 잠깐 객원교수로 갔었는데 말이야. 알다시피 그곳이 수학계에서는 학교명성에 걸맞게 최고의 선생들이 모여 있어서 수학에 일가견 있는 학생들이 모여들지. 그 학교에서 나는 같은 수학과의 테렌스 교수와 작업을 했는데 어느 날 그의 책상에서 입학 원서를 하나를 발견했지. 그게 종인군의 원서였는데 그는 종인 군을 꼭 UCLA로 데리고 오고 싶어 했어. 나는 궁금했지. 수학계에서 천재라는 말을 듣는 테렌스 교수가 열성적으로 관심을 쏟는 학생이 어떤 사람일까 말일세. 입학원서를 살펴보다가 학력란에 고등학교 중퇴라고 적혀있길래 다른 란을 자세히 읽게 되었어. 집은 흑인빈민촌에 있었고 그 안의 학교에 다녔는데 알고 보니 이 학교가 다른 학교의 문제아들을 모아놓은 학교더군. 보통 그런 학교는 졸업장을 위해 다니는 데 중퇴라니 뭔가 이유가 있겠다 싶지 않은가. 그런데 수상경력에 AMC 12 수학경시대회, AIME, USAMO에서 모두 탑을 차지했다고 나와 있었다네. USAMO는 말이야, 전 대회(AMC 8, 10, 12&AIME)에서 미국에서 천재라고 뽑힌 250명이 겨루는 수학대회인데 250명 중에 속하기만 해도 이미 굉장한 일이야. 종인 군이 국제올림피아드에 나갔으면 거기서도 1등을 했을 거라 장담하네. 어쨌든 대회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그의 비상함에 테렌스 교수와 존 드레이크 씨(에니그마 수학연구소 소장)가 관심을 가졌지. 테렌스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림피아드에 나가려 했지만 본인의 의지가 없고 무엇보다 가정문제가 있어서 환경이 불안정 하다고 했다네.“


긴 이야기에 교수님은 잠시 숨을 돌렸다. 나도 긴장을 잠시 풀고 커피를 들이켰다.


 "애초에 대회를 나갔던 것부터가 본인의 의지가 전혀 없었다고 하더군. 종인 군이 다니던 학교가 평판이 좋지 않으니까 홍보를 위해서 교장이 억지로 내보낸 모양이야. 나는 종인 군이 대회나 겨루기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네.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 사람이란 본능에 따라 뽐내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지. 그러다보면 욕심이 생겨 본래의 목적을 잃곤 하는데 어린 나이의 아이가 어떻게 과시욕이 없는지 궁금했어. 나는 테렌스 교수에게 그를 만나보고 싶다고 청했네. 하지만 사람과의 접촉을 꺼린다고 했어. 받은 전화번호로 몇 번을 걸어도 전화는 받지 않았지. 그래서 찾아갔네. 찾아가도 단번에 만나지 못했어. 왠지 오기가 생겨서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그 안에서 하루를 보냈지. 늦은 밤에 집으로 들어가는 젊은 동양 아이가 있길래 종인 군이라고 확신했네. 뒤따라가서 전화했던 사람이라 말했더니 경계하는 눈으로 가라고 더듬거리며 말하더군. 나는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어.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네. 매몰차게 집으로 들어가 버렸지. 그 뒤에도 찾아갔네. 두 달을 넘게 찾아갔을 거야. 주위에 사는 흑인 소년들이 종인 군에게 돌이나 쓰레기를 던지면서 시비를 걸길래 쫓아준 적도 있었고 점심이나 저녁을 사 들고 가서 현관문 앞에 두고 오기도 했지. 그리고 기회는 왔어. 내가 자기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늦은 오후에 차창 문을 두드렸네. 그제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거지.“


"가끔 인내를 시험하는 경우가 있곤 하죠."


교수님도 내 말에 동의하며 크게 웃으셨다.          


 "맞아. 마치 내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싶다는 것처럼 말이지.“

"정작 본인은 경계심 밖에 없는데 말이죠.“

"하하하, 경수 군. 그건 맞네. 내가 보기에도 다른 의도는 없어 보여. 어쨌든 그와 나는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했네. 알겠지만 몇 번을 만나도 대화다운 대화는 하지 못했어. 극도로 사람을 싫어해서 방어적이라 묻는 말에 대답하는 정도였지. 하지만 중요한 걸 알게 되었네. 종인 군이 원하는 건 UCLA의 입학이 아니라 안정하고 살 수 있는 주위 환경이라는 걸 말이야. 나는 그걸 알게 되고 바로 테렌스 교수에게 따지러 갔네. 입학원서는 본인이 작성한 게 아니라 테렌스 교수가 존 드레이크 씨와 함께 무력으로 추진하는 일이었어. 나는 격하게 반대했네. 무엇을 하든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고통이 클 테니 종인 군에게 힘든 일일 거라 말하고 인권시위단체에 진정서를 넣을 거라 권고했네. 결국, 테렌스 교수와 존 드레이크 씨는 나에게 종인 군을 맏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 대신 에니그마 연구소에 종인군을 연수시켜야 한다 했지. 그 또한 그가 원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 의견을 물었네. 에니그마 연구소에서 리만가설을 연구해야 할 거라 했더니 종인군의 눈이 번쩍 뜨였네. 말 그대로 번쩍 말이야."

"소수연구를 말하는 건가요?"

"맞아. 종인군의 머릿속에는 소수와 우주가 가득 차 있지. 우리가 몇 세기에 걸쳐 밝히지 못한 모든 가설들과 추측은 곧 물리로 연결되어서 그의 머리 안 세계를 만들어낸단 말이네. 이건 경수군이나 나는 범접할 수 없는 종인 군만의 세계야. 마치 아인슈타인의 뇌 속처럼 탐구하고 싶게 만들고 두근거리게 하지. 뭐든 다 꺼내보라고 재촉하고 싶다고. 아주 매력적이야."

"로빈 교수님에게는 그렇겠어요."

"모든 수학자의 마음이지. 종인군은 에니그마 연구소로 들어갔네. 나는 그가 잘 적응할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어. 아무리 수학이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도 인간관계는 꽃피우기 마련인데 누구와도 잘 지내지 못했어. 존 드레이크 씨는 그를 상담치료사에게 보냈네."

"미카엘 김 선생님이요?"

"맞아. 나도 종인군의 심리치료를 권하려던 참이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순탄치 않았어. 거부를 심하게 해서,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했지. 치료는 이어지지 못했고 나중에는 연구소도 그만두었지. 하지만 존 드레이크 씨는 물적 지원을 멈추지 않았어. 왜냐하면 종인 군이 연구소에서 치룬 테스트에서 단번에 풀어 낸 추측 때문이야."

"아, 그 푸앵카레의 추측이군요?"

"맞아. 그 추측은 수학능력에 물리학 지식과 상상력이 없다면 풀지 못할 철학적 난제야. 알아도 완벽히 이해해서 증명하기 어려운데 갓 17살 된 소년이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여 풀어버렸네."

"종인 이에게 매력을 느낀 건 교수님만이 아니네요."

"그렇지. 존 드레이크 씨는 종인 군이야 말로 리만가설을 증명 할 힘이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지. 드레이크 씨는 종인 군을 거의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네."


로빈 교수님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내가 뉴욕으로 되돌아와야 할 즈음 종인군은 나와 같이 갈 것을 원했네. 그의 동의로 내가 재직하는 윌링턴대학에 입학했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거야. 나는 종인 군을 어떻게든 사회화 시켜서 그가 이루어 낼 수 있는 일을 좀 더 크고 광대하게 만들어주고 싶네. 그럴 수 있는 자질도 있고 기회도 있어. 하지만 걸림돌이 있지. 사람은 어느 정도는 사람 사이에서 살지 않으면 말라죽어. 이건 만물공통의 법칙이네. 사회화로 그의 장애가 좀 더 순화될 수 있을 거라 나는 믿어."

"어려웠네요. 여기까지 오기가."

"아무래도 쉽지는 않았지. 나 혼자 해결하기에 벅찼지만, 경수 군이 있으니 왠지 이제부터는 일이 잘 풀릴 거 같은 기분이 드네."


나는 보란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럴까요? 반성문 쓰기도 이렇게 진을 빼는데요?"
"걱정 말게. 쓰게 될 거야. 꼭 써야 할 이유가 있을 테니까."
"무슨 이유요?"
"그 이유를 밝히는 건 내 소관이 아니고 또, 증명하기도 어려우니 이 문제는 경수 군에게 넘기도록 하지. 안 그래도 나는 풀 문제가 많아.“
"수학과 교수이신데 어련하시겠어요.“
"그 말 대로네. 긴 이야기였는데 지루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네. 경수군."
"재미있었어요.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수 군에게 필요할 같아 말한 것뿐이니 고마워하지는 말아. 커피도 다 마셨고 이제 나는 다음 수업을 가봐야겠군,"
"네. 들어가세요. 교수님."

손을 들어 보이고 교정을 걸어가는 교수님의 뒷모습은 무언가 모르게 듬직했다. 이렇게 저를 염려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김종인은 알까 싶었다. 이번 대화로 내가 그를 상대하며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교수님의 희망이라는 무게가 얹어졌음을 인식했다.









 ******          

    





모든 이의 방은 방주인의 냄새가 배게 마련이다. 그의 방에서도 그랬다. 숱 많은 머리카락을 휘릭넘기고 남은 반동으로 귀를 괴롭히다가 다물어진 아랫입술을 이 사이로 밀어넣는 뭉툭한 손가락이 그리는 선. 무심하면서 지극히 안정된 선은 정해진 방향으로 선회 해 그의 후줄근한 티셔츠를 잡는다. 쇄골에 닿은 네크라인을 펄럭이는 동작을 훔쳐보는 내 시선의 온기는 그때 떨어져 나간다. 이래서야 봉사활동을 나가는 곳에서 환영 해 줄리가 없는 게 당연했으니까.


싫다는 그를 억지로 잡아끌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럼 기다렸다는 듯 도리도리 급하게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새의 날개처럼 나풀거리는 머리카락이 풍기는 냄새로 표정이 굳으면 고개도 일시 정지. 눈썹이 요상한 굴곡을 그려도 자비는 저기 외계로 던지고 일주일 넘게 입었을 티셔츠부터 벗겨낸다. 뒤이어 바지버튼도 게 눈 감추듯 풀고 아래로 내린 다음, 욕조에 물이 다 받아지면 쭈뻣쭈뻣 들어간 그를 위해 머리를 감겨준다. 실은 위해서가 아니라 잔소리의 스타트를 알리는 버튼을 누른 것이랄까.


 "갔는데 애들이 너한테 냄새 난다고 피하면 좋아?! 애들은 생각한 걸 바로 입으로 말한단 말이야. 그냥 가면 애들이 너 거지라고 부를 거다!! 하긴, 네가 그걸 알면 매일 씻었겠지."


별말 없이 입술을 쭉 빼고 모아 욕조 안 거품을 부는 저 주둥이를 때려주고 싶은데 말은 못하고 대신 괴수 발톱에 빙의해 벅벅 긁었다. 덕분에 오뚝이처럼 머리가 이리저리 휘둘려도 말이 없다. 그나마 나랑 같이 가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라 라고 우쭐해 보지만 그나마도 반사 당했다. 교수님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애를 데리고 사셨는지 저절로 혀가 쯧쯧 하고 내둘러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유치원 새싹반 아이처럼 손이 간다. 저번 쇼핑에서 사 온 아이보리 색 스웨터를 입히고 검정 바지에 하운드투스 코트도 입혔다. 꾸미고 나니 나름 괜찮게 보였다. 솔직히 많이 멋있었다. 얼마 하지 않았으나, 감상은 접어두겠다. 우리는 서둘러 집을 나왔다.


 "너 왜 학교 다니고 싶어?"


올라탄 서브웨이 빈 좌석에 나란히 앉자마자 물었다. 나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힐끔거리는 시선을 의식했지만, 그는 아예 모르는 듯했다. 그의 눈이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으니 당연했다. 오히려 내가 그들을 의식하고 불편한 눈길을 주고 있었다.


 "아니, 그렇잖아. 네가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동의했으니까 퇴출은 면한 거잖아. 딱히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되는 스펙인데 다니고 있으니까. 나 같으면 시간 낭비 일 거 같은데. 맨날 푸는 소수도 그렇고."
 "....배...고파."
 "야."


눈알이 빠질 기세로 노려봐야 반응도 없고 배만 부여잡고 있으니 기가 빠졌다. 소리치면 메아리쳐 와야 하는 건데 그냥 먹어버린다. 내가 산에 대고 외친 건 아니지만. 둘 만이 아는 조용함이 흐르고 그가 물었다.


 "....학교 안..다녀..도..., 겨, 경수라, 랑 만나... 알수 있, 어?"
 "어? 어....그렇....겠지?"


나는 그와 별다를 바 없는 속도로 저 짧은 문장을 더듬었다. 백만 가지 중 하나 내지는 두개를 예상 했었지만, 살피는 눈동자와 함께 건 넨 말은 허를 찌른 예상치 못한 대답인 동시에 질문이었다. 한 줄의 문장이 공중에서 떠오른 느낌에 내 목이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어색했다. 정거장 마다 사람이 쌓여가는 전철 칸에 우리만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틴에이저들과 전철이 달리는 소음으로 고막이 진동해도 우리만 느끼는 정적이 있었다. 균형 있게 각진 어깨를 감싼 외투 안으로 하관을 넣은 그의 속눈썹이 조용히 내리깔렸다.









댓글 1개:

  1. 죠닌이가 점점 경수한테 의지하는군여ㅜㅜㅜㅜ저런 과거가 잇엇다니..ㅜㅜ경수랑 만날수있냐고 물어보는거 왜이렇게 찌통인지ㅜㅜㅋㅋ종인이가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했다면 정말 범접할수없는 사람이되엇겠져..?종인이의 아픈곳을 끌어안아줄경수와 점점 마음을 더 열어갈 종인이가 기대됩니다..!!!빤니 다음편으로 가야겟어욘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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