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5월 14, 2015
author's note 1
<author's note>
본론에 앞서, 내가 에세이 형식을 빌려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삶을 크게 바꾼 한 남자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것을 쓰며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고 일기를 쓰는 기분을 맛보고 싶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취지와 오차 없이, 누군가의 일기를 읽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2014년 4월 뉴욕에서,
도경수
그를 처음 본 건 대충 12년 전이었다. 나는 그때 이곳 미국 뉴욕의 윌링턴대학에서 색채학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서 유학 온 지 겨우 육 개월이 된 새내기였다. 수업을 들어가도 전문단어가 산재한 내용을 다 알 수 없어 교수님의 강의를 풀레코딩 해야 하는 시기였고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산더미 같은 양의 영어 전문 서적과 씨름해야 했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는 게 가장 첫 번째 소원이었고 생일은 다른 날과 다름없이 도서관에서 보냈다. 그날 내 머리와 눈은 괴테의 색채론 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리 편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는데 나와 학우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뒤쪽에서 탕! 하고 책상을 내리치는 굉음이 도서관 사방을 울렸다. 당연히 소리가 난 쪽으로 일제히 시선을 몰았고 그곳에 한 남자가 있었다.
"아, 또 시작이야."
옆에 앉아서 다른 책을 들여다보던 레이가 중얼거렸다. 레이는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생활영어나 겨우 알아듣는 중국인 친구였다. 동병상련이라 그런지 자연적으로 붙어 지내는 일이 꽤 많았다.
"또 라니?"
도서관이라는 걸 의식해 내가 속삭였다.
"너 쟤 몰라?"
이번엔 고개만 흔들었다.
"하긴 쟤가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넌 모를 수도 있겠다. 쟤 너랑 같은 한국 출신이야."
"그래?"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돌려 조용한 도서관에 이질적인 소리를 만들어 낸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테이블에 앉아, 낡아빠진 노트에 분홍색 고무 지우개가 달린 누런 연필로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만들어 낸 격렬한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눈은 자신이 적은 연필 자국을 따라가고 있었다. 닳아빠진 데님과 싸구려임이 확실한 구멍 난 티셔츠를 걸친 그의 사지는 길었지만, 분위기가 깔끔하지 않았다.
"쟤가 수학을 엄청나게 잘한대. 천재라고 하더라고. 수학과 로빈 교수가 쟤를 데려 왔다는데
저번 학기까지 에니그마 수학연구소에 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어. 근데 쟤가 좀,"
레이는 말을 멈추고 자기 관자놀이에 손가락으로 원을 빙빙 돌렸다. 그것은 만국 공통어였기에 그게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별말 없이 다시 남자를 보았다. 뭐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지 연필을 쥐지 않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는 그대로 전과 같은 자세로 돌아가 집중했다. 그 뒤로는 큰소리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나의 관심거리에서 그는 사실상 사라졌다. 다시 그를 만난 건 딱 일주일 뒤 교수님의 방에서였다. 나는 가난하지 않아도 용돈이 필요한 학생이었다. 학생 공고판이나 게시판에 학생 파트타임 자리가 있으면 한두 시간이라도 해서 용돈을 비축해 두고 싶었고 마침 로빈 교수님의 일을 도와줄 보조를 구한다는 원티드 종이를 발견했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 못했던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파트타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당연했다. 천 명이 넘는 학교의 학생 중, 나를 제외한 누구도 그 일에 지원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뒷날 교수님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교수님 주변의 일을 도울 줄 알고 찾아간 오피스에서 나는 굉장히 의외의 의뢰를 받았다. 아니, 어쩌면 교수님의 녹색 소파에 앉아 있던 그를 보고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을지 몰랐다.
"일단 여기, 김종인 군. 종인군은 내가 가장 아끼는 학생이야. 종인 군, 여기는 도경수 학생."
그는 나에게 눈길은 주었지만, 딱히 인사다운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건, 그의 리액션이 너무 미비했기에 자세히 관찰해서 얻어낸 결과였다. 교수님이 약간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종인 군은 관심분야에만 집중하는 나머지 사교성이 부족하고 일상생활에서 사회적 예의를 잘 모르는 편이야. 사정상 내가 보호자역을 하고 있지만 요즘 개인적인 연구를 하고 있어서 몇 시간 정도 종인 군을 봐줄 사람이 필요해. 그래서 자네를 뽑았네. 아, 아무도 지원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게. 나는 경수 군이 종인 군과 같은 나라 출신이라는 거에 마음에 들어서 고용한 거니까 오해하지 말라는 말이야. 한 시간에 20달러 주겠네. 하루에 3시간, 일주일에 세 번. 날짜는 경수군 스케줄에 내가 맞춰보기로 하지. 어떤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간절하지 않아도 비상시를 위해 여유분의 용돈이 필요했다. 3시간에 60달러의 아르바이트는 꽤 유혹적이었고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김종인과 시간을 보내는(이랄까 따라다니는) 일은 전적으로 나의 스케줄에 맞춘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이 되었다. 그리고 후회의 쓰나미는 월요일 첫날 바로 닥쳐 들었다. 요는 행동거지였다. 그가 교수님의 제안을 못마땅해한다는 게 단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학교식당에서 만난 직후부터 3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때 묻은 종이에 무언가를 빼곡히 적고 있었다. 이제보니 그건 숫자였다. 숫자의 나열. 그것도 아주 긴 숫자의 나열이 몇 장인지 모를 장수에 깜지가 되어있었다. 새로운 페이지에 숫자를 적어나가는 손길은 바쁘지 않았지만 쉬지 않았다. 조용했고 정적이어서 아무런 케어가 필요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시간도 시간이라 출출하기도 해서 뭐라도 먹으려 일어나려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숙이고 필기하는 그의 머리에 대고 뭐라도 먹겠냐고 물었다. 예상대로 대답이 없었다. 나는 곧 내가 먹을 필리 샌드위치를 사와 오렌지주스와 함께 뜯어먹었다. 조용했던 세 시간이 지나자, 그는 교수님 방으로 사라졌다.
수요일엔 캠퍼스 잔디밭에서 만나, 나는 논문을 썼고 그는 숫자를 썼다. 금요일에는 빈 강의실에서 그는 숫자를 쓰고 나는 전공 책을 복습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한 달 동안 그는 못마땅하고 찌뿌둥한 표정으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찌그러진 얼굴을 보고 파트타임을 지원한 나 자신에게 스스로 질타했지만, 솔직히 편한 아르바이트였다. 하지만 심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심해했던 내게 하느님이 벌을 주실 모양이셨는지 불시에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가 도서관에서 숫자를 적다가 책상을 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주먹을 꽉 쥐고 연속으로 여러 번 나무책상을 내리쳤다. 맞은 편에서 논문을 쓰다 깜짝 놀란 나는, 뭔가 참을 수 없어 이를 꽉 문 그의 억울한 표정에 신경이 쏠렸다가 주위에 웅성거리는 학생들에 의해 정신을 차렸다.
"야, 일어나, 나가자. 빨리!"
이렇다 말도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는 그를 있는 힘껏 잡아올렸다. 그와 동시에 클래스가 다른 근육량으로 뿌리치는 거센 팔짓에 맞고 도서관 시멘트 바닥에 내리쳐졌다. 도중 나무의자에 얼굴이 찍혀 이마가 찢어졌다.
"허, 피."
세상에 태어나 고운 것만 보아온 눈이 피를 봤으니 약간의 공황상태였다. 나는 곧 다른 학생들의 도움으로 보건실로 옮겨졌고 얼마 가지 않아 로빈 교수님이 보건실에 들이닥쳤다.
"경수군! 괜찮나? 이마가 찢어졌다 들었는데, 괜찮은겐가?"
"아, 교수님. 네. 괜찮아요."
피가 턱으로 흐르긴 했지만,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거나 하는 심한 상처가 아니었다. 세바늘만 꾀고 위에 밴드를 붙이고 나서라 그나마 담담한 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로빈 교수님 뒤에 보이는 그림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종인 군, 어서 경수 군에게 사과를 해야 하지 않겠나? 이건 종인 군의 잘못이지 않은가."
인상을 찌푸린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결국, 교수님은 그를 보건실에서 내쫓았다.
"미안하네. 경수군. 내가 대신 사과하겠네."
"아니에요. 사과는 김종인이 해야죠. 교수님 사과는 받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 셨다.
"그래. 대신 꼭 사과를 시키겠네."
"아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한다고?"
"네."
어떻게 그에게서 사과를 받아낼 것인지에 대해 교수님은 묻지 않았지만, 미소를 지었다. 그 안에는 조금의 흥미로움이 있었다.
"난 경수 군이 당장에 파트타임을 그만둘 줄 알았네."
"저도 그럴 줄 알았어요. 아무튼, 알아서 할게요."
"좋아. 그래주면 나는 고맙지. 괜찮은 걸 봤으니 난 이만 가겠네. 연구 도중에 뛰쳐나와서 말이야. 그럼 종인 군에게는 수요일에 경수 군을 만나라고 하겠네."
지금 와서 생각해도 내가 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지 않았는지 다는 알 수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성 위에서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분명한 건 그때 내 본능의 촉이 발동했고 그 결과,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매듭이 지어졌음은 의심치 못할 사실이었다.
피를 본 사건 후에도 그와 학교식당에 마주앉아 서로의 일을 했다. -정확한 요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교수님에게 알아서 한다고 말은 했지만 나는 그에게 사과하라고 재촉하거나 종용하지 않았다. 본인이 미안함을 느껴서 하는 사과가 아니라면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빛의 산란작용에 대한 책을 읽다가 무심코 구겨진 노트 종이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다 그가 많은 숫자를 쓰면서 때로 어떤 숫자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불규칙했고 그래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그가 순순히 입을 열지 않을 걸 알면서도 질문했다.
"이거 왜 동그라미 친 거야?"
대답은 많이 늦었다. 그렇지만 두꺼운 입술이 몇 번을 헛입술 질하는 걸 보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니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입술 틈새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prime..num..ber."
말했다! 놀라움을 감추고 올라오는 궁금증을 또 한 번 묻는다. 이게 뭐 별거라고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소수? 수학에서 쓰는 그 소수? 그럼 이 동그라미 친 게 소수고 나머지는 소수가 아니란 말이지?"
그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색채학 전공자인 나는 중고등학교 때 외운 소수에 대한 기초 지식 밖에 아는 게 없었다. 게다가 그가 쓰는 숫자는 예를 들면, 7839421458, 7839421459, 7839421460 이런 식으로 이어나가는, 일반인은 대체 이게 무언지조차 알 수 없는 숫자의 조합이었으니 그가 평소 열심히 하던 게 소수 찾기였다는 걸 한 달이나 걸려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은 또 하나 있었다.
"근데 왜 이런 걸 하는 건데?"
"....시간..때우기."
"시간 때우기?"
그의 말을 되풀이한 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때우려고 열 자리가 넘는 숫자를 암산하여 소수를 찾는 놀이를 하는 사람은 내가 살아온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나저나 뜬금없지만, 목소리가 생각보다 남자답고 좋았다. 내가 그동안 그의 목소리를 궁금해했었다는 걸 듣고서 깨달았다.
"진심이야? 그걸 시간 때우기로 한다고? 미쳤구나."
잘 뻤은 눈썹이 내 끝말에 선을 구겼다. 제대로 지뢰를 밟았다는 걸 알았다.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보통의 사람들은 말이야, 너 연필 좀 줘봐. 그러니까 심심할 때...는...이런걸......한다고."
건네받은 연필로 숫자가 한가득인 노트에 푸들 강아지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그는 그걸 가만히 보더니 왜 푸들을 그렸느냐고 느릿하게 물었다.
"어?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이, 있을 거야. 어렸을 때 키웠거나...아, 아니면 그리기 쉽다거나...이,인간이 무언가를 행할 때...이, 이, 유가 없는 일은 하, 하...지 않아. 그건 보, 보, 본능과도 같은 거야."
약 6초 만에 그린 그림 하나로 봇물 터지듯 말하던 그는 강아지 다리 밑에 숫자의 다음을 다시 써내려갔다. 그건 우리가 대화한 몇 분간을 되돌려 놓은 모양새였다. 그가 노트에 박은 고개 덕에 헝크러진 정수리에 대고 어이없는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우리 학교는 첫 학년 반년, 그러니까 두 학기는 학교 교내 기숙사에 거주해야 하는 조항을 입학조건에 제시하는 여러 학교 중 하나였다. 이미 반년을 채운 나는 당연히 비싼 기숙사에서 나와 학교에서 떨어진 다운타운에 싼 방을 얻었고 매일 아침 학교로 등교하고 있었다. 평일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빈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밝아 오는 아침을 멍하게 보는데 김종인이 생각났다. 직접 부딪혀 본 그는 단지 행동이나 생각이 대다수의 사람과 빗겨가 있을 뿐이었다. 푸들 그림을 그리는 단순작업도 이유가 있다는 확신에 찬 말을 곱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른바, 그를 감시하는 파트타임을 하고 있는가. 떠오른 적당한 이유는 여윳돈.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원하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 자신에게 합리적인 사람이다. 원했다면 교수님의 말대로 이마에 상처를 입은 날 그만둘 수 있었고 명분도 있으니 교수님도 한 번에 인정할 터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둥그렇게 떠오른 아침 해를 보면서 그의 말대로 내 행동의 적절하고 통쾌한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손이 저절로 밴드 위로 올라갔다. 학교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성큼성큼 걷다 급히 뛰었다. 마음이 급하게 로빈 교수님의 오피스로 달려가고 있었고 두발 또한 같았다. 무례하게 노크를 하지 않고 쳐들어갔지만, 교수님은 인상을 찡그리지 않으셨다.
"교수님. 궁금한 게 있어요."
서로의 전공분야에 대해서 논의하러 교수님 방에 온 것이 아니었다. 수학과 교수에게 색채학 학도가 할 질문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책장에서 책을 찾던 교수님은 미소를 지으며 궁금한 게 뭐냐고 물었다. 나도 교수님도 바쁘니까 본론만 말하겠다고 운을 띄웠다.
"그...애 말이에요. 정신과 치료받아본 적 있어요?"
"누구? 김종인 학생 말인가? 음...테라피(상담)는 받아본 적이 있지."
"지금은 요?"
"지금은 본인이 거부해서 받지 못하고 있어. 종인 군이 원할 때 다시 받게 되겠지."
"그럼, 혹시 그 정신과 선생님 성함이나 이메일 주소 같은 거 알 수 있을 까요?"
"뭘 하려고 그걸 묻는 거지?"
"이것저것이요."
"그 이것저것을 설명해주지 않으면 내가 그분의 성함을 알려주지 않을 텐데도?"
"....그 왜, 가끔 김종인이 책상 치는 거 말이에요. 그거 고치고 싶어서요."
교수님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나를 힐끔 보고 잠깐 말없이 의자에 앉은 교수님은 생각을 정리한 듯 명함수첩에서 비즈니스 카드를 하나 꺼내주었다. 카드에는 '제니스 메디컬센터부장 미카엘 김' 이라고 쓰여 있고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도 기재되어 있었다.
"한 가지 당부할 게 있네, 경수군."
"네. 말씀하세요."
"나는 종인 군이 경수 군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말인데 그 아이를 잘 부탁하네."
"네? 음...교수님 말씀의 요점을 잘 모르겠어요."
"그런가? 그럼 하던 대로 잘 부탁하네."
"네. 교수님."
교수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피스를 나왔다. 12년 전의 나는 어렸고 미숙했다. 교수님만큼 김종인을 길게 봐온 상태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 그가 어떤 상태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교수님 방에서 있었던 대화는 머리에서 지운 채, 곧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노트북 옆에 비즈니스 카드를 두고 미카엘 김 선생님에게 보낼 이메일을 작성했다. 제니스 메디컬센터는 LA에 있는 저명한 사립병원이었다. 물론 직접 거기까지 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한시를 다투는 사안도 아니니 이메일로 문의하는 게 가장 적당하다 싶었다.
TO : 미카엘 김 선생님께
TITLE: 김종인 군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안녕하세요, 김 선생님.
저는 김종인 군과 같은 뉴욕의 윌링턴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도경수라고 합니다.
수학과 로빈 교수님의 제안으로 얼마 전부터 종인 군을 몇 시간 동안 케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종인 군을 지켜보면서 그가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책상을 내려치는 행동인데요.
이외에 다른 돌발행동을 보인 적이 없어서 저는 그것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다가 로빈 교수님께 선생님의 연락처를 받고 이메일을 보내봅니다.
만약 개선 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말고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말 부탁합니다.
뉴욕에서 도경수 올림
내 문의에 대한 김 선생님의 답 메일은 하루 만에 도착했다.
TO : 도경수군
TITLE : 미카엘 김입니다.
도경수 군이 보낸 김종인 군에 대한 이메일을 받고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는 내가 봐온 환자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면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심리적인 면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심리테라피를 시행했습니다. 그는 에니그마 연구소에서 연수하며 치료를 병행했었는데 돌연 연구소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테라피는 중도에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알고 지내는 뉴욕의 행동심리전문의를 소개해주었지만 그가 다녀갔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아스퍼거장애에 가까운 행동을 보입니다.
그러나 아스퍼거장애를 앓고 있다고 단정 짓기 힘든 이유는, 서투르기는 하나 언어소통능력이나 감정표현이 여타 아스퍼거장애 인들과는 다른 양상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돌발적인 행동에 관해서는, 그동안의 치료로 그의 과거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더 이상은 종인군의 거부로 알기 힘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답을 못 드리는 점 사과드립니다.
나는 그가 노력하면 타인들과 좀 더 어울려 생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 주치의로서 그에게 관심을 가져준 경수 군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이메일을 주시거나 전화를 주시기 바랍니다.
제니스 메디컬센터부장,
미카엘 김으로부터
메일의 내용은 희망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려운 숙제만 남겨주었다. 아스퍼거장애라니. 그것이 어떤 장애인지 몰라 두려움을 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봐야 했다.
"아스퍼거장애. 특정 분야에 보통이상의 특출난 호기심과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언어소통능력과 신체적 능력이 결여되는 증상을 보인다...."
이때의 나는 협소한 소견으로 아스퍼거장애를 병이라 치부했다. 외국에서는 장애인들과 정상인이 허물없이 지내는 관계를 권장하는 편이라 그들에 대한 인식에 있어 편견이 덜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격리되는 게 당연한 한국에서 자랐고 장애를 가진 사람을 친구로 삼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돌발행동이 과거와 연결이 되어있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는 어깨에 돌덩이 두 개를 얹은 기분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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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첫 문장부터 모든 말초신경을 집중시킬 수 있었어요!!!! 종인이를 처음 본 게 12년 전이라니..그 사이의 시간이 정말 많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뭔가 분위기가 우울한 것 같기도 해요..종인이가 대답을 했을때 저도 모르게 속으로 탄성을 질렀어요 이 작품 대박 예감인데요? 작가님 화이팅이에요 기대할게요
답글삭제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기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놀러와주세요!!
답글삭제레드북님 2017년도 늦은 시간에 글 남깁니다! 약간 어려울수도 있는 소재가 재밌고 신선하게 다가와요 ㅎㅎ종인이 순수한 모습이 좋아요 앞으로 경수랑 어떻게 친해지면서 마음을 열지 기대되요 ㅎㅎ재밌게 읽겠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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