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5월 26, 2015

author's note 3







 웬만한 유학생들이 거쳐야 하는 ESL 코스는 유익할지 몰라도 돈이 만만치 않다. 영어 미숙자들을 위해 학교에서 마련한 클래스라지만 3개월에서 6개월을 전공수업을 들을 수 없게 해놓은 학교의 시스템 때문에 한국에서 유학 오기 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에, 내민 서류로는 원하는 전공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 검증을 할 수 없어 더 힘들었다. 열심히 영어공부를 해야 했다. 덕분에 학교에서 요구하는 스코어를 넘겨 ESL 코스를 뛰어 넘고 바로 캠퍼스로 입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긴 폐해는 엄청났다. 학교강의라는 건 일반 생활영어와는 전혀 다르다.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단어의 향연. 적어도 네다섯 개의 서적을 독파해야 나올 수 있는 리포트 작성하기. 단기간에 테스트에서나 리포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건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인고의 육 개월이 지나자 그나마 조금씩 자신이 붙어, 가을학기 마지막 테스트에서 B+을 받을 수 있었다. 평소 세네 시간을 자던 나도 성적을 확인한 뒷날은 마음 놓고 스무 시간을 잠에 투자했다. 몸은 힘들지만, 충실한 생활. 그러나 조금은 단조로운 일상에 들어온 그. 


"저, 저,기...겨,겨..."


산발 된 머리에 퉁퉁 부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채 방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문 손잡이를 잡은 상태로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고 머뭇거리고 서 있었다. 겨우 눈을 뜬 나로 말하자면 침대 시트를 끌어안고 잠에 덜 깨어 무의 상태 그러니까, 멍하게 있었다. 그러다 손목에 채워진 시계로 스무 시간 하고도 삼십분을 잔 걸 깨닫고 얼른 일어나 앉았다.


"배...아...ㄴ"

"으응. 나도 배고파. 뭐 해먹을까? 하아~아암~~!"


기지개를 쭉 펴면서 뭘 먹어야 할지를 생각했다. 오늘은 기분도 좋고 하니 원하는 걸 만들어 줄까 하고 물었더니 오므라이스를 해달라고 했다. 냉장고를 열어 양파, 당근, 계란, 피망 마지막으로 소고기를 꺼내어 조리에 들어갔다. 요리를 할 동안 그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텅빈 키친테이블에 앉아 오후의 햇볕을 쬐며 졸고 있었다.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흡사 동물 같았다. 위험하지 않은 나른한, 그런.


"너도 지금 일어난 거야? 오후 네 신데?"
 "......"


대답이 없다. 뭐 어차피 오늘은 토요일이고 뭘 하든 자기 맘이긴 하지. 아예 머리를 대고 본격적으로 자기 시작하는 그를 힐끔 보고 프라이팬을 꺼내들었다. 그와의 동거 두 달 째. 룸메이트가 되기 전 로빈 교수님은 나에게 주의사항 몇가지를 당부하셨다. 몇 가지 중 지키기 힘들고 난해했던 것은 '혼자 두되, 혼자 두지 말라.' 는 사항이었다. 오피스에 방문했을 때 말씀 하셨던, 그가 철저한 고독을 즐긴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방에서나 캠퍼스에서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그가 있었다. 책을 읽거나 소수를 찾고 멍하게 어딘가를 보며 생각하고 어떨 땐 고민하다가 번뜩 떠올랐다는 듯 노트에 공식을 적어나갔다. 안 그래도 헝클진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잡아 뜯다 마른세수를 하다가 캠퍼스 벤치나 집안 소파에 널브러지기도 했다. 꼭 그에 대해 관찰하려 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의 하루는 내가 서술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나를 제외한 사람과의 공유나 대화는 없다고 봐야 했다.


숟가락과 포크를 세팅하고, 만든 오므라이스가 담긴 접시 두 개를 놓았다. 나름 맛있는 냄새가 났는지 고개를 쳐든 그는 눈을 끔뻑이며 숟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는 없었다. 그래도 그간의 경험으로 그와 같은 마음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셀 수 없는 사람이 있고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되어 만나지만, 소리를 내어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존재를 알게 되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내 말은, 알아듣는 사람이 대단한 게 아니라 그러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 있어 행운인 것이다.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쓰고 거의 모든 감정을 표현함에도 너와 나만이 아는 무형체의 새로운 언어가 생기는 일은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다. 모두가 그를 차가운 파란색으로 볼 때, 적어도 나만은 따뜻한 노랑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처럼. 그는 점점 나에게 있어 특별한 노랑이 되어가고 있었다.


 "맛있어?"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잠옷이 꽤 너덜너덜했다. 물론 잠옷이 따로 있지 않았다. 밖에서 입던 옷을 입고 바로 잠들었다가 그대로 나가기도 했다. 샤워는, 글쎄. 다수, 나의 강요가 필요했다. 이 정도면 글을 읽는 사람도 알아들었으리라 확신한다. 무언가를 제시하기 전에 물어보는 습관을 들여야 했기에 한없이 단순 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스케줄을 물어봤다. 교수님께 지시 받은 말하기 연습이 목적인 훈련이었다.


 ".....채...ㄱ읽을...거야."


한참을 생각 끝에 그가 말했다. 나는 나중에 읽어도 되는 책이라면 같이 외출하자고 설득했다.


 "나가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티셔츠랑 겨울옷도 사자."
 "......"
 "갈 거지?"
 ".....으..응."


마지못해 끄덕였는지 정말 가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두 달간 그의 꼬질꼬질함에 혀를 찰 수준이었으니까. 계절은 으스스한 겨울로 달려가고 있었다.







 ******







아파트로 들어와 우편물을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는 물리학수업이 하나 더 남아있어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수업 종료 전까지 그로서리에서 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입에는 빨간 사과가 물려있었다. 물건을 들고 열쇠로 문을 열다 우편함 안을 뒤적여 꺼낸 편지 다발 더미를 떨어뜨렸다. 문 먼저 열고 바닥에 떨어진 편지들을 서둘러 줍다가 그의 앞으로 온 우편 두 장에 눈이 갔다. 하나는 에니그마 연구소에서 온 편지였고 다른 하나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힌 손 편지였다.


 "산드라 킴?"


발신인의 이름. 우편도장을 들여다보니 LA에서 온 편지였다. 나머지는 다 나에게 온 우편물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보내신 편지도 보였다. 세상은 LTE에 인터넷 화상 전화가 당연하지만, 아버지는 다르다. 하실 말씀을 직접 적은 편지로 대신하는 낭만적인 분이시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나도 편지가 싫지 않다. 장을 봐 온 물건들을 서둘러 냉장고에 정리해 넣고 식탁에 앉아 가방에서 펜과 종이를 꺼냈다.



 '아버지께,


아버지, 보내주신 편지 잘 읽어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잘 계시죠?

그러고 보니 형의 대학졸업식이 코앞이네요. 형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졸업선물로 원하는 게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없다고 하고 알려주지 않았어요.

형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어서 제가 알아서 사려고요.

걱정하실 거 같아서 미리 말씀 드리지만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최근 학교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고 룸메이트도 생겼어요.

룸메이트에 대해 말하자면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고 교수님도 알아주시는

 수학천재에요. 약간의 장애가 있지만, 저와 아주 잘 맞는 것 같아요.

아, 장애가 있다고 해서 저에게 해를 가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애 랑은 정말 잘 지내고 있어요.

몇 달 사이 룸메이트와 관계된 많은 일이 있었는데 조만간 또 편지하거나

 전화할게요. 어머니와 형에게 건강 하라고 말씀드려주세요.

그리고 형이 한번 놀러오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여기 오면 형도 아주 좋아할 거에요.

다시 편지 드릴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둘째 아들, 경수올림'



이번 편지는 짧았지만 조만간 다시 보내기로 작정하고 펜을 놓았다. 수업 종료시각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온 우편물을 챙겨 얼른 문을 잠그고 나왔다. 그리고 이 두개의 우편물은 이하의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주인에게 전달되게 된다.









학교캠퍼스는 여러 건물이 있는데 내가 자주 들리는 곳은 미술전공자들이 몰린 '스완관' 이였다. 화통이나 스케치북 등을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는 그들을 보는 내 눈은 항상 부러움에 젖곤 했다. 분수대 옆에서 햇볕을 쬐며 희희낙락하는 학생들의 손에 들린 크로키북이나, 조소를 만들기 위해 커다란 철사나 나무들을 나르며 낑낑거리는 아이들이 지나갈 때 가끔 멍하게 쳐다보는 내가 있었다. 그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카네기관'에는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몰려 있고, 거의 모든 강의실이 조용하고 다들 무언가를 읽거나 쓰고 있다. 두 건물은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성질의 원소를 융합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도서관은 딱 중앙에 있었다. 나는 스완관을 가로질러 도서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학생아이디를 신분증명기에 찍고 들어간 도서관은 평소와 다르게 뭔가 웅성거렸다. 계단을 올라 양쪽으로 있는 도서관 중 왼편에 많은 학생이 몰려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가장 뒤쪽에 서 있는 여자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야?"
 "죠 가 난리를 쳤어."
 '죠' 라는 존재는 김종인이다. 그의 퍼스트네임인 '종인'을 발음하지 못하는 외국 애들은 '종'을 '죠'라고 멋대로 불렀다.
 "무슨 난리?"
 "물리학과 헨리 교수님을 때렸대."
 "뭐?!"


물리학과 헨리 교수가 누군지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단지 교수를 때렸다는 것만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에워싼 군중을 해치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동양인에 키가 좀 작은 편인 헨리 교수는 한 손으로 배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상을 집고 막 일어나는 중이었다. 사건의 용의자인 그는 거칠게 숨을 쉬며 주먹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이 상황을 더는 보지 못하고 힘줄이 튀어나온 팔을 잡았다.


"종인아. 무슨 일이야?!"


그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헨리 교수가 했다.


"보면 모르나? 학생이 교수를 구타했네. 종인 군. 잘 듣게. 조만간 로빈 교수와 함께 총 교수회의에서 보지."


교수는 엄청나게 화가 났는지 이를 꽉 물고 학생들 사이로 사라졌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온 로빈 교수님은 나에게 그를 부탁한다고 하고 헨리 교수가 없어진 방향으로 달려가셨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건지 몰려들었던 애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우리는 이제 시작이었다. 총 교수회의라니. 그럴 만도 했다. 학생이 교수를 구타하는 행위는 월권에 간주되는 중대한 문제다. 학교라는 틀 속에서 무력으로 권위에 도전하는 일만큼 바보스러운 짓은 없다. 잘못하면 강제퇴학을 당할지도 모르는 사안이었다. 그가 왜 교수를 구타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시선이 몰리는 걸 감수하며 엄청난 힘으로 그를 잡고 학교건물 뒤의 잔디밭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처음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당황했지만 커다란 나무 밑에 도착했을 때엔 엄청나게 화가 나 있었다.


"너 제정신이야? 어떻게 교수를 때려?! 왜 때린 거야, 도대체?"
 "......"


침묵.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으로 가린 눈을 볼 수 없어서 더 답답했다.


"왜 때렸는지 말하라니까!"


아무리 괴짜에 장애가 있더라도, 그가 말했다. 모든 건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그렇다면 말해야 했다. 로빈 교수님처럼 나도 이제 그를 어느 정도는 보호하는 입장이 되었기에 이 사건에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납득 할 만 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는 말하지 않았다. 불안한 숨을 쉬며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은 굳게 닫아 버렸다. 이런 상황에 내 궁금증 풀어 줄 사람은 교수님 뿐이라 생각했고 다짜고짜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이 상태로는 밖에 있는 게 불안하니까 일단 집에 두고 교수님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내 손은 거칠게 뿌리쳐졌다.


"자, 잡지마! 아,아,안갈거야!!"


울림좋은 목소리가 근처 나무에 부딪혀 잔디밭에 퍼졌다. 날 보지 않으려 돌린 고개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턱선은 꽉 물어버린 이 때문에 근육이 올라와 있었다.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걸 보는 게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지만 그렇다고 흥분한 사람을 그냥 둘 수 없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잡아."
 "시,싫어."
 "집에 갈 거야, 종인아. 그러니까 내 손 잡아."
 "....."


그의 고민이 눈에 보였다. 아까부터 팔을 뻤고 있던 나는 초조해서 아랫입술을 윗니로 물었다. 어차피 억지로 대려 갈수는 없었다. 무엇이든 원하지 않으면 실행하지 않는 외골수이니 내 손을 잡지 않는 이상 나도 그를 도울 수 없다. 팽팽한 긴장감이 서로를 스칠 뿐, 나와 그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머뭇거리며 내밀어진 손에 지지부진했던 침묵은 깨졌다. 그제서야 나는 입을 열수 있었다.


"가자."


들리지 않게 쉰 안도의 숨은 잔디를 날아가던 바람으로 섞여 들어갔다. 놓칠세라 그를 꽉 부여잡고 빨리 걸었다. 끌려오는 쪽이 뭐라 할만 했지만 전혀 말이 없어서 불안했다. 학교 근처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타닥소리를 내며 운동화가 끌려 들어왔다. 0의 손을 내려놓고 망설임없이 뒤돌자, 그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마주 본 시선을 피하는 눈길에서 당혹스러움을 봤다. 현관에 서서 우리는 말없이 숨만 쉬었다. 아까 부리나케 걸어오면서 거실에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봐야지라고 다짐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벌을 세워둔 꼴이 되었다. 나는 가슴을 부풀렸다 터지듯 숨을 쏟아내고 양 손바닥으로 그의 볼을 감싸 고개를 나에게로 고정시켰다.


"왜 내 눈 피해?"
"........"
"고개 숙이지 말고. 말해."


그는 말이 없었다. 단지 굳은 표정과 힘줄이 선 목줄기가 지금 상태를 대변했다. 왜 눈을 피하는 지 말해줄 기색이 전혀 없어보였다. 그의 반응에 하염없이 상실했다. 반동으로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나자 갑자기 두려워졌다. 이런 사람을 다루어본 적 없는 내가 감성적 직감과 섣부른 판단으로 가까이 하려고 한 게 실수 였을지 모른다. 주먹 쥔 그의 손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늦가을의 날씨에 닿아 그런게 아니라는 게 마음 아팠다. 사람을 때리는 행위가 남긴 상처의 잔상은 선명하게 떠올라 가슴을 파고들었다. 문득 빨강이 남기는 색에 대한 일화가 떠올랐다. 어느날 저녁 괴테가 여관에서 진홍색 조끼를 입은 여자를 발견해 응시 했는데 여자가 떠나고 난 뒤, 초록의 의복이 남았다는 이야기. 이 일을 계기로 색의 보색과 계시대비를 연구했던 괴테는 문제와 씨름했다. 그러나 나는 대문호 괴테가 아니였고 그를 실망시킬지 몰랐다. 손바닥에 붙은 양볼의 뜨거움과는 별개로 방향을 잃은 공황이 시작되려했다.


"화, 화, 화, 내지..마."
"화 안 냈어."

속이 뻔히 보이는 말투였다. 나는 분명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도경수라는 사람은 대담했지만 무너지기 쉬웠다. 이런 내가 싫었다.  

"내,냈잖아."
"....."
"도..겨...경..수."


그가 자기 손으로 내 손을 덮었다. 높은 체온이 살갗을 뚫고 머릿 속을 빠르게 덧칠했다. 그건 타인의 것이고 이질적이여야 하는데 거부감 따윈 없이 안으로 섞여 들어와 퍼졌다. 우리는 이때까지 스킨쉽을 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남자끼리 자연스럽게 살 위에 살을 포개고 있었다. 둘 중 누구도 경기를 일으키거나 어색해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럴 겨를도 없었으나, 둘 다 돌발적 상황을 당연시 하고 있었다.


"나, 나쁜 짓 아,안했어. 거,거억정 안해도 돼."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왠지 몰라도 그의 말이 사실로 다가와서 그렇다고 믿고 싶어졌다. 내가 봐왔던 그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은 아닐 지라도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길 바랬고 다른 잡 생각은 하기 싫었다. 그의 마음과 지금을 듣지 않아도 전류가 흐르듯 무언가가 흘러 들러와 날 안심시켜 주었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네가 아무말 안해도 난 알아들었어. 그런데 교수님은 아닐테니까 꼭 죄송하다고 말해."
"...으응."


어누룩하게 긍정하는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힘있게 뻣친 머리카락은 손의 방향을 따라주지 않았다. 마치 그 자체와 같았다. 이러다 부러질라. 바보 같은 사람아.


"이 바보야. 넌 천재가 아니라 바보야."


내 말에 그가 피식 웃고는 미소를 떠나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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