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찍부터 내가 원하는 세상이 여기에 없음을 알았다. 남들 다 가는 유치원은 스킵했고 대신 내가 선택한 미술학원을 1년만 다녔다. 학원 선생님께서 재능이 있다고 폭풍 칭찬을 하셔서 집단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이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지역 미술대회에 그린 그림을 출품해보라고 하셨고 준우승을 했다. 그게 계기가 되어 초등학생 때는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었다. 계속 그리고 싶었다. 중학교에 가서도 그림을 그렸다. 재능이 있고 노력하여 나보다 수십 배는 잘 그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잘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미술학원을 다녔다. 정확히 말하면 입시 미술학원. 나를 포함한 모두가 같은 걸 그리는 장소. 잘된 작품을 보고 그대로 베끼라고 했다. 데생도 수채화도 모사 그림만 몇백 장이 넘어갔다. 다들 잘해내는 것 같았지만 난 점점 썩어가고 속은 재가 되었다. 그런 상태로 집, 학원, 집 이 단순한 서클을 2년 반을 반복하고 두 손을 들었다. 결국, 원하던 예고실기시험을 치르지 않고 인문계 고등학교와 대학에 갔다.
정신력의 문제야 라고 일침하면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단연하건데 나와 같은 학생이 적어도 한 명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그림과 멀어지다 보니 손은 굳었다. 그리고 후회할 때에는 너무 늦었다. 내가 색채학을 공부하려 뉴욕 유학을 마음먹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림은 못 그려도 언저리에 앉아라도 있고 싶었으니까. 나의 과거는 이랬다. 크게 굴곡 없고 다치지 않고 나름 신에게 버림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역시 내 두 발이 서 있고 싶어 하는 장소는 없었다.
책상을 내리치며 그는 어떤 과거를 떠올리나 궁금했다. 물론 행복할 리 없는 표정이어서 어느 쪽인지 짐작 했으나 섣불리 물을 수 없었다. 미카엘 김 의사선생님으로 부터 이메일을 받은 일주일 뒤 그와 학교 앞 다이너에서 만났다. 우리는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아 각자가 원하는 음식과 음료를 시켰다. 여전히 빗자루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후줄근한 옷매가 김종인임을 말해주는 트레이드마크 같았고 진한 쌍꺼풀이 내리 앉은 얼굴은 표정없이 숫자를 찾고 있었다. 그와 달리, 나는 읽고 있던 전공 책에 집중 할 수 없었다. 미카엘김 선생님의 이메일 내용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스퍼거장애를 겪어본 적 없는데 그와 가까운 증상이라고 해서 체감이 될 리 없다. 그의 손가락에 잡힌 연필이 사각 이는 걸 유심히 보던 나의 시선이 주먹을 가볍게 쥔 왼쪽 손으로 쏠렸다. 계속되는 침묵에 잡념이 섞여 유난히 긴장 되었다. 내가 먼저 말을 붙이기로 결정 했다.
"너 지금 어디 살아?"
그가 굽어 있던 등을 폈지만 날 보지 않았다. 대신 내가 내려놓은 책에 눈길을 주었다.
"...교수님이랑 같이..살아."
보호자역을 한다더니 정말 그랬는지 교수님 집에 산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한마디 대답을 듣고나니 정말 그에게 궁금한 게 많아졌다. 그래서 멈출 수 없었다.
"너 고향이 어디야? 한국? 미국? 미국이면 미국 어디?"
"...LA."
"한국말은 할 수 있어?"
"조금."
"해봐."
그는 당황해 했다. 입이 다물려 져서는 열어질 줄 몰랐다. 그때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내 이름을 한 번도 입에 올려본 적 없다는 것을. 나도 같았다. 다른 이에게 말한 적은 있어도 면대 면으로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당연히 의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두 이름을 서로에게 뱄어 본 적이 없었다.
"내 이름 알지? 말해봐."
"...도..경..수?"
"어. 김종인. 종인아."
내가 말하고도 알 수 없는 따스함이 온몸으로 퍼졌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꽃이 되었다.' 이런 부류의 글귀 말이다. 이 말을 많은 곳에서 들어왔다. 하지만 하나하나를 뼈저리게 느낀 날은 없었다. 이유를 생각해 낼 겨를도 없이 내가 도경수라서 기쁘다 생각했다.
"...응?"
그가 답했다. 아니, 종인이가 답했다. 수줍게 삐거덕거리는 공기를 타고 그의 눈길이 조심스럽게 나를 보았을 때, 사방이 막힌 다이너에서 미풍을 느꼈다. 볕이 따스한 날 들판에 서서 쏴아아아 하고 대지를 휘감는 바람을 등지고 눈동자에 보인 모든 자연을 만끽하는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이 떠올랐다. 햇살이 가득히 묻어있는 색감과 하늘, 수풀, 꽃, 여인을 하나로 묶은 위대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치킨 파니니 어느 분이시죠? 펜케이크는 요?"
낭만에 산통을 깬 주인공은 다이너의 웨이트리스였다. 금발의 그녀는 치킨 파니니를 그의 앞에 놓고 내 앞에 팬케이크를 내려놓고는 음식을 주문할 때 같이 시켰던 콜라 캔을 중앙에 두고 다음 오더를 나르기 위해 부엌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나는 왠지 지금이 적절한 때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에니그마 연구소에서 연수했다고 교수님한테 들었는데 거기서 뭐 했어?"
색채학의 심도 있는 이론'이라는 책은 내 손에 의해 이미 덮어져 있었다. 유학 와서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책을 덮어본 적 없는 나에게 이건 중대사건과도 같았다. 그 원인이 윌링턴 대학 내에서 가장 특이하고 멀리 꺼려지고 있는 학생인 김종인이라는 게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음....연구하고..숫자입력하고...문제 풀고..또..."
"또 뭐 했어?"
"..어...논문도 쓰..고..소수도 찾..고.."
"재미있었어?"
파니니 안에서 채소를 고르던 두툼한 손가락이 급정지했다.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린다. 그래서 재미있지도 않은 걸 왜 했냐고 묻자,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럼 답은 나왔다. 에니그마 연구소가 지겨웠었구나.
"왜 수학이 재미있는데?"
내 질문에 그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저음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알고 있음에도 그때는 못 들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귀가 걸러 냈는데 머리로는 기억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애써 적지는 않겠다. 이 이슈는 후에 자세하게 기록할 것이다.-
"응?"
"까, 깔끔해서. 단순하고..군더더기 없고..그..아..름다워.."
수학이 아름답다니. 그림도 아닌데 아름답다니.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펜케이크에 버터를 발라 메이플 시럽을 뿌렸다. 팬케이크의 맛은 버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까다로운 고집은 집중으로 이어지는데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좀 더 고소하고 맛이 풍부한 버터였다면 맛있었겠지만 어차피 다이너니까 이 정도로 만족하자고 자신과 타협하고 있을 때, 앞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설마 했는데 크지 않아도 그의 첫 웃음이었다.
"왜? 왜 웃어?"
"..아니야."
그가 웃음기 서린 눈매로 부정하며 어색한 손놀림으로 치킨 파니니를 크게 베 먹었다. 그의 그릇에 양상추와 토마토 오이 등의 채소들이 수북했다. 나는 보기 싫다는 표현을 적나라하게 하며 턱짓했다.
"야. 김종인. 너 그거 다 먹어."
"...싫어. 마앗, 맛, 없어."
"먹으라면 먹어. 이게 얼마나 중요한 식품군인데. 사이에 끼워서 다 먹어. 알았어?"
정말로 진지하게 말했지만 그는 웃었다. 쓰레기더미 같던 채소를 포크로 찍어 치킨과 빵으로 가득한 입 안으로 넣어주었다. 안면을 일그러뜨리면서도 뱄지 않고 씹는 걸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채소를 먹이는 일은 성공했다. 비록 오늘은 채소쪼가리지만 내일은 달라질지 모른다. 앞으로 내가 그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무슨 질문을 하고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느리고 더딜지라도 변하리라 그렇게 기대했다.
******
"으아~~ 그런 애랑 일주일에 세 시간이나 있는 거 짜증 나지 않냐? 하~암~"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켠 레이는 오후가 되서까지 하품삼매경이었다. 함께 걷고 있는 캠퍼스 길 잔디밭에 누운 애들도 낮잠을 자거나 나무에 기대어 나른 해 보였다. 나 또한 슬슬 졸음이 찾아왔다. 평소 넉넉히 잠을 자지 못 하는 게 이렇게 기습적으로 찾아온다. 쪽잠이라도 자고 싶지만 요새 파트타임을 시작한 후로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졸음에 못 이겨 가까운 벤치에 앉아 버렸다.
"아니. 처음에는 말이 되게 없었는데 요즘엔 말 붙이면 잘하더라고. 익숙해진 건지.."
"말을 잘한다고? 난 걔가 말하는 걸 들어 본 적도 없다. 벙어리인 줄 알았어."
"벙어리는 무슨, 말 잘해."
"언어장애인이라는 소문이 있어. 그래서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걔가 한 소문 하잖아."
"무슨 소문?"
"가정문제 때문에 십대 때 가출해서 거지였었다는 말도 있고 정신분열증 있다는 소문도 있고,
그 왜 책상 치는 거 말이야. 그게 정신분열증이면 그렇다는데?"
매번 당하는 일이지만 선입견은 무섭다. 의식함과 하지 않음을 떠나 어떤 교육을 받든 자아가 생기면 따라오게 마련인 그것은 단 한 명도 거스르지 않고 모두가 보유하고 있기에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선입견은 몸 안에 품고 있는 칼날의 개수와 비례한다. 많은 순간 알게 모르게 상대방을 흠집 내어 너덜너덜하게 만드니까. 말없이 쓰게 웃었다. 주장대로 라면 나도 레이와 다를 바 없기에 마음이 무거워서 더는 그 주제에 대해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응. 아, 맞다. 주말에 기숙사 애들이랑 술 마시러 가기로 했는데 갈래?“
"시간 나면 전화 할게."
"전화 꼭 해! 너 대려오라고 여자애들이 난리다! 그래픽 디자인 과에 티파니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알았다고 말하고 뒤돌아 걸었지만 레이는 내가 전화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음먹고 시작한 공부와 싸우고 있고 그게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매번 나를 불러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오늘의 모든 강의가 끝나고 캠퍼스를 나가 버스를 타려는데 로빈 교수님께서 오피스에 들르라고 전화를 주셨다. 오래간만에 들어간 오피스 안의 녹색 소파가 눈에 띄었다. 그를 대면 했을 때가 떠올라 내어주신 머그잔을 들며 그때를 회상했다. 분명 어쭙잖은 인사는 있었으나 방황하는 시선, 소극적인 손짓, 머뭇거리는 입술이 인상적이였던 그를 떠올리는 게 싫지 않았다.
"마카엘 김 선생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하셨더군."
교수님이 주의를 끄는 발언을 하셨다. 물론 단번에 신경이 몰렸다.
"무슨 일 때문에요?"
"아니, 특별히 무슨 일이라기보다는 자네에 대해 물어보셨어. 어떤 친구인지 궁금하셨나 보지. 도경수 군은 영리해서 종인 군과의 거리를 잘 파악 할 거라고 말씀드렸네.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도 좋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뭔가 많이...본래의 목적과는 빗나간 거 같아요. 교수님."
"그게 무슨 말인가."
"전 단지 용돈을 벌려고 지원한 것뿐이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덫에 걸려든 기분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어요."
"하하하하하하!"
오피스를 울릴 정도로 호탕하게 웃으신 교수님은 자신의 두 손을 깍지끼고 다리에 올려 두셨다.
"아마도 그의 가치 때문일 것으로 생각하네. 종인 군은 특별한 사람이야. 백만 명 중에 하나가 가지는 천재적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 수학 수재지. 학계의 저명한 인사인 존 드레이크 씨의 총애를 받아 에니그마 연구소(수학연구소)에서 연수를 할 정도니 그의 가치를 환산하면 수천 억, 아니 수조 원이 넘겠지. 열일곱에 그레고리 페렐만의 푸앵카레의 추측 해결논문을 보고 단번에 이해했어."
푸앵카레의 추측. 존 드레이크 씨가 설립이사로 있는 에니그마 연구소에서 제시한 밀레니엄 난제 일곱 문항 중의 하나로 그레고리 페렐만에 의해 유일하게 해결된 난제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앙리 푸앵카레가 1904년 논문 끝에 남긴 추측의 한 줄을 인류가 백 년을 고민해 해결했다.
"나는 그가 푸앵카레의 난제를 푼 페렐만 씨와 무언가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네. 페렐만 씨를 직접 만나 본 드레이크 씨가 말하기를 종인 군과 페렐만 씨의 분위기가 닮아있다 했지. 깊이를 모를 만큼의 철저한 고독을 본인이 즐긴다는 말에 나도 동조했네. 종인 군은 타인과 가까이 몇 시간이고 같은 공간에 있기를 편하게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야. 나도 그와 이만큼 가까이하기 힘들었네. 그런데 이유는 모르지만 경수 군에게는 달랐어. 그래서 내가 부탁이 하나 있네."
무엇 때문인지 모르나 조금 당황했다. 교수님의 부탁이라는 게 학생의 입장으로 기분 좋은 일이 될 확률이 적다는 것 정도는 아는 나이다.
"실은 이번에 내가 이혼을 하게 되어서 말이네. 와이프와 같이 지내던 집을 팔게 되었어. 아, 질리도록 많이 들었으니 위로의 말은 필요 없네. 요점은 그게 아니니까. 아무튼, 집을 내놓은 지 두 달 만에 계약하게 되었네. 약 한 달 뒤면 종인 군이 나와 사는 거처에서 나가야 한다는 말이지. 내가 알기에 경수 군은 캠퍼스 기숙사에서 따로 나가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맞는 건가?"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종인 군은 존 드레이크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가 혼자 살기 원한다면 집을 알아봐 줄 수 있고 사실상 나에게 혼자 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해서 말이야. 경수 군만 괜찮다면 룸메이트 형식으로 동거를 해줬으면 하네."
"...아까 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타인과 같이 사는 거에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이런 건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시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물론 물어볼 참이네. 경수 군의 의사를 먼저 알고 싶어서 말이야. 만약 그렇게 해준다면 자네는 방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 하고 싶군."
대학 내에서 가장 괴짜로 불리는 녀석과의 동거가 불안하긴 했다. 그렇지만 싫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내 안에서 쓸데없는 사명감 같은 게 고개를 들어 결단력을 부여해 주었다.
"방세는 내는 걸로 하겠습니다. 파트타임비도 주시는데 방까지 공짜로 쓸 수는 없어요."
"좋네. 그럼 종인 군에게는 경수 군이 물어보는 걸로 하지."
교수님은 언제나의 사람 좋은 미소 지으셨다. 사실 나는 교수님께서 그에게 직접 물어 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에서부터 흘러 나온 긴장이 몸과 얼굴까지 전해졌는지 이런 말도 하셨다.
"걱정하지 말게. 거절하지 않을테니."
"거, 걱정은 하지 않아요."
생각이 섞인 웃음이 느껴져 머쓱했다. 교수님께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걸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언지 뭐가 말을 더듬게 만든 건지 나조차 의문이 었다. 내일 만나는 구나 라고 되뇌이고 나니, 결전의 날 처럼 느껴져 더 어색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온 몸이 내뿜는 스스로의 변화를 나만 모르고 있었다. 바보처럼.
금요일에 만난 우리는 처음으로 캠퍼스에서 멀리 떨어져 나왔다. 맨해튼시티에 있는 웬만한 대학이 다 그렇지만 넓고 좋은 캠퍼스는 기대하기 힘들다.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바람을 쐬려면 센트럴파크로 올라가는 게 훨씬 났다. 날씨도 좋고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와 나는 몇 블록을 걸어 센트럴 파크 가장자리의 돌길에 발을 디뎠다.
"너 나랑 살래?"
".....어?"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평범한 친구 같으면 이게 이래서 우리가 잘 맞는 거 같으니 기회도 좋으니까 룸메이트 해볼래? 이렇게 직구로 던질 수 있었겠지만, 도통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고심하다 아침이 되서 내린 결론이, 기승전 없는 결을 들이대는 방식이었다.
"아니, 너 교수님 집에서 나온다며. 혼자 살 거라고 했어? 혹시?"
그가 내 말 따위에는 관심이 쏙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츄러스를 주시했다. 키 작은 스페인계 아주머니가 만들어 가판에 놓고 파는 츄러스는 길고 번들거리는 기름기가 가득했다. 설탕이 잔뜩 뿌려져 보기만 해도 눈썹이 찌푸려졌지만, 그에게는 침 떨어질 음식인 듯했다. 이걸 사주지 않으면 이야기를 듣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2달러를 내밀고 길고 굵은 츄러스를 받아든 건 그의 큰 손이었다. 한 입에 쑤욱 넣어 사 분의 일은 베어 문 입술에 흰설탕가루가 가득했다. 내가 아까 아주머니에게서 받은 냅킨으로 언저리를 대충 털어내 주었다. 그러면서 나보다 키도 체격도 큰 김종인이라는 남자를 이를테면 보호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기분은 참으로 생소했다. 그러면서도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나랑 사는 거 싫어? 나 요리 잘해. 청소도 잘하고."
우물거리는 볼이 잔뜩 부풀었다. 눈꺼풀 위의 굵은 선이 내려앉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까치집이 지어진 머리카락이 팔락거릴 때의 만족감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한 채로 어쭙잖게 홍보해대는 나에게 딱히 고민하는 기색 없이 허락해 주었으니까. 나는 사실 그가 부정적 행동을 하든지 그게 아니면 역시 혼자 살겠다고 말 할 줄 알았다. 힘들지 모르겠다고 예상했던 제안은 의외로 단순하게 끝나버렸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우리의 동거가 결정되었다.
로빈 교수님의 자택은 맨해튼에서 차로 사십 분 정도 걸리는 롱아일랜드의 맨하셋이라는 곳에 있었다. 맨하셋은 늙은 부자들이 살기로 유명해서 모든 집이 저택이라고 불릴 만한 수준이다. 잔디밭에 수영장 정도는 기본 옵션인 곳도 많은데 교수님 집은 그나마 검소했다. 교수님의 부인은 다른 곳에 집을 얻어 나가버린 상태여서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걸린 액자에서 사진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몸뚱이 하나이니 많은 짐이 있을 리 없었지만, 책만 빼곡히 담긴 커다란 이사박스 서른 개와 옷가지가 담긴 한 박스의 이삿짐을 보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옷 박스 안은 반은 비어있었을 정도였다. - 그와 나는 서로의 집에 들러서 교수님이 빌려온 벤에 이삿짐을 싣고 새로운 거처로 달렸다. 어디에 살게 될지 몰랐는데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파트의 꼭대기 5층을 받게 되었다. 다니는 학교가 뉴욕대학이나 컬럼비아대학이었다면 이스트 업타운의 기숙사를 싼 가격에 빌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그동안의 안타까움을 한 번에 씻겨 내려줄 만한 위치의, 깔끔하게 리노베이트한 2LDK의 아파트였다. 덕분에 버스비가 굳어서 행복했다.
교수님은 짐을 내려주고 집 열쇠를 건네 준 후, 학교로 가셨다. 우리는 서로의 짐을 각자의 방에 넣기 전에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폰으로 검색해 근처 피자집에 배달주문을 하고 소파에 씌워진 흰 천을 조심히 걷어 앉았다. 천 위에 내려 앉았던 먼지가 사방으로 날리며 햇빛에 존재를 드러냈다. 덕분에 학기초도 아닌데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텁텁한 공기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나자 속에 작은 기대감과 행복이 생겼다. 아무것도 없이 박스만 난무한 거실을 쓱 둘러보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때, 심하게 머뭇거리던 뭉툭한 손가락이 나의 이마 위로 올라왔다.
"...이거..안...없어지는..거야?"
"아, 그런 거 같아. 머리카락으로 가리면 되지, 뭐."
상처를 중간에 두고 양 쪽으로 세 개씩 바늘구멍이 난 상흔. 머뭇거리는 자세로 조심스레 만지던 손가락이 떨어졌다. 그가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둥그렇고 투박한 끝이 떨렸었다. 뭉툭한 떨림을 고스란히 받은 이마 위에 남의 체온이 남았다.
"미..미,미안해...내가, 그, 그..."
다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들을 수 있었던 말. 여러 감정의 말 중에서도 고마울 때 고맙다고 하고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렇기에 그 두 가지를 말하는 법을 어릴 때부터 배운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익숙하지 않아 더듬거리며 설익은 말을 힘들게 꺼내려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사실 아주 만족스럽고 마음에 들었다. 이제부터 배우면 된다. 이렇게라도 들었으니 오히려 고마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미안함이 그득한 눈 밑이 무거워 보이는 건 딱히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얼른 화제를 돌리고 싶어졌다.
"미안하면 나 그거 가르쳐줘, 푸...뭐의 추측."
"푸앵..카레?"
"그래. 그거. 교수님이 그랬는데 네가 그 문제 논문을 한 번에 이해했다고 하더라. 그게 뭔데 로빈 교수님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는 건지 궁금해."
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물음은 많았으나 김종인이라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다. 그도 그럴게 수학은 나에게 좌절감만 맛보게 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만나는 일이 쌓일 수록 정작 그를 진정으로 받아드리려고 다가선 일이 없었다는 걸 자각하고 나자, 거부감은 줄었다. 김이 솔솔 나는 따끈한 피자를 앞에 놓고 마치 수학과 학생 둘이 마주 앉아 토론하는 것처럼 질문과 응답을 시작했다. 수학과 물리를 설명하는 그는 마치 딴 사람 같았다. 쉬지 않고 더듬는 버릇은 사라지고 봇물 터지 듯 말하며 신나했다. 나의 예감처럼 그날 하루 새로운 그를 발견했다. 우리는 축제의 주인공처럼 먹고 마시고 웃으며 이야기 했다.
******
실은 나는 성격적으로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어느 쪽이냐 묻는다면 없는 쪽에 속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라고 운을 띄우기에는 이미 멀리 와 있었다. 그만큼 그는 나에게 신기한 존재였다.
"아니, 좀 더 쉽게 설명해보라고."
수학이나 물리학에 관해 젬병인 나를 다른 수학전공자 대하듯 하면 안 된다고 구박을 주자,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때마침 학교 근처 공원의 플레이그라운드 안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미끄럼틀 옆에 놔둔 고무 볼과 누가 버린 개 목줄을 쓰레기통 안에서 꺼내 들고 왔다. 이사한 날, 푸앵카레 추측의 해설을 들었지만 정말로 한 움큼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내가 어떻게 고등교육을 받았었는지 한숨이 터질 지경이었다.
"음...그러니까..이...경..계가 없는 단일 연결 3차원이 고무 볼이라고 생각해봐."
"일단, 응."
"이 고무 볼에 폐곡선...곡선이 이, 개 목줄인데 내, 내가 위에 고정 시켰잖아. 이걸 이렇게 양쪽 끝을 잡고 교차해서 수축시키면 점이 되잖아. 그럴 경우에는 고무 볼이 3차원 구의 형태이고, 점이 되지 않는다면 중간이 비었다는 가정으로 위, 위상동형 그러니까 도넛 모양이라는 추측이야. ...알겠어?"
의심스러움을 담은 말투는 확신이 없었다. 분명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겠지 싶었다.
"넌 내 얼굴이 알아들은 걸로 보여?"
"아니."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더 이상은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공간감각과 이해력이 부족한 내가 어째서 이런 것에 시간을 쏟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의외로 지루하지 않았다. 그가 보통사람들처럼 술술 말하는 걸 처음 봐서 그런지 흥미진진했기 때문이었다. 이해를 못한 건 둘째치고 내 눈동자는 전에 없이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어릴 적 봤던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도 이보다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이건 발견의 재미였다.
"그래서 그게 왜 중요한데."
"...우주의 모양을 비교적 정확하게 추측할 수 있으니까."
"더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야."
내 얼굴을 가만히 보다 피식 웃었다. 그래. 김종인은 잘생겼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웃으면 더 잘 생겨 보인다. 후줄근한 청바지에 흰색이었을 긴 팔 티셔츠를 즐겨 입는 그는 자신의 외모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처음봤을 때부터 변함없는 머리카락은 잘 감지 않을 뿐더러 린스를 쓰지 않아 뻣뻣하고 눈을 가려 보일락 말락 한다. 본인이나 주변 사람은 몰라도, 가까이에서 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가 잘 생겼다는 인식을 하고 나서는 매일 같이 날뛰는 머리카락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밥 먹자, 종인아."
"나..치..칰키인."
거짓말처럼 다시 더듬기 시작했다.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치킨? 그럼 코리타운 가서 치킨사올까?"
"어, 어."
"강의 끝나고 같이 가자."
"어."
까치집 지어진 머리를 하고 해맑게 웃는 얼굴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힌다. 웃을 때면 항상 그렇게 되곤 했다. 볼 때마다 아이처럼 웃는다 생각했다.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아이스크림을 물고 현관문 안으로 들어 올 때나, 소파에 웅크리고 낮잠이 들었을 때의 그는 더욱 더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순수한 그가 있고 이런 무지한 평화가 금방 깨질 거라 예상하지 못하고 웃는 나도 있었다. 우리는 작은 산을 맞닥뜨리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의 사이에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