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야 한다.'라는 명제로 가설을 하나 세웠다. 백현이는 어린이다. 어린이는 장난감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백현이도 장난감을 좋아할 것이다. 장난감을 고르려면 토이 스토어로 가야 한다. 무엇을 좋아할지 모르니 장소는 선택의 폭이 넓은 곳으로 한다. 대형매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산 선물을 받으면 좋아할 것이다. 라는 가설은 선물을 주었을 때 좋아할 확률이 높은 물건을 주되, 확률이 높다는 의미는 빅데이터로 검증 된 순위, 다시 말하면 가장 많이 팔리는 장난감 리스트를 기반으로 한다는 꽤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합리적인 선물 찾기의 맹점이 있었으니, 우리 둘 중 아무도 백현이의 기호를 모른다는 허점이 있었고 이 허점은 가설이 가설로만 그칠 가능성과 더불어 오류를 생산할 지 모른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빽빽한 인파를 헤치고 42가의 뉴욕에서 가장 많은 장난감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게로 향했다.
들어서면서부터 압도하는 스케일의 넓은 매장에는 색색의 다양한 완구가 구비되어 있어 아이뿐 아니라 어른까지 사로잡았다. 말이 성인이지 그와 나도 아직 히어로에 열광할 나이라서 선물을 고른다는 명목으로 스스로 괘나 즐기고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모인 선물상자를 호기심 있게 바라볼 나이의 경계선이 있는 게 아닌 것처럼 그와 나를 포함한 도처의 어른들도 각기 다른 장난감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특히나 아이언맨을 좋아했다. 어디서 발견했는지 모를 아이언맨 마스크를 쓰고 스윽 옆으로 와서 얼굴을 들이댔지만,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자 비 맞은 강아지만 양 시무룩하게 마스크를 벗어 두고 왔다. 본의 아니게 이런 식으로 그를 실망하게 하거나 화나게 만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고치지 못할 천성이었기에 얼마 안 가 그의 쪽에서 무뎌지는 낌새를 보였다. 바꿔 말하면 나에게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고 해석하는 게 좋겠다.
적게는 십 달러에서 많게는 몇백 달러를 호가하는 장난감의 선명한 색깔을 보면서 시간이 갈수록 눈이 시려왔다. 게다가 얼마나 선정적이던지. 신이 나서 매장을 둘러보던 그도 언젠가부터 둘러보기만 하고 물건을 집어 들지 않았다. 나는 철저한 평범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낡은 가설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백현이가 이런 장난감을 좋아할까? 어떻게 생각해?"
나는 결국 참지 못해 그에게 물었다.
"난 왠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 같아."
어지러운 형광색 인형을 잡고 어떠냐는 표정으로 그의 반응을 기다리자, 우물쭈물하던 그는 두 팔로 뒷짐을 진 후 천천히 턱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그럴 것 같아."
이 한마디를 계기로 장난감가게를 나왔다. 번쩍이는 전광판 밑에 서서 우리는 척 봐도 알 만큼 피곤해하고 있었다. 휩쓸려 떠밀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넘쳐나는 사람들 때문이었고, 조만간 덮치지 않을까 싶을 크기로 혼을 빼는 광고가 원인이었다. 머리 위의 하늘은 건물 꼭대기로 촘촘해서 화려하나 오래 있을 자리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뉴욕에 사는 보통사람의 일상이라 한다면, 그와 나는 서로의 영역에 집중한 나머지 그들과는 동떨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내가 변했다는 걸 절감했다. 한편, 그는 눈알이 눌릴만한 힘으로 눈꺼풀을 비비고 있었는데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행위였다. 얼른 이곳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백현이의 선물을 사지 않는다면 더욱더.
서 있기 버거웠던 그곳에서 나와 우리가 향한 장소가 어디인지 당신은 짐작할 수 있겠는가? 바로 집이었다. 그와 나만의 공간. 우리는 사람이 드문드문 앉은 버스를 좋아하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부서지는 공원을 좋아하며 역으로 사람이 많지만, 규율로 선을 친 조용한 도서관을 뺄 수 없게 마음에 들어 한다. 하지만,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공간은 집이며 이 안에서는 어떤 '나'와 '그'라도 싫어하는 사람 하나 없다. 세찬 바람은 불지 않고 비와 태풍은 바깥세상의 이야기이다. 집은 항상 우리의 귀가를 기다리고, 우리는 집이야말로 유토피아라 장담했다. 나는 거칠게 운동화를 벗고 아무렇게나 가방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소파에 털썩 소리가 나게 몸을 던졌다.
익숙한 편안함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쉴 때 즈음, 그가 책상에 올려져 있던 파일을 가지고 내 옆에 앉았다. 면식이 있는 누런 파일은 백현이의 프로필이었다. 이쯤에서 프로필 일부분을 발설하자면, 이름은 변백현. 나이는 8살. 프라이머리 스쿨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에 다니다 말았다. 주된 문제는 불안정한 주변 환경이었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빈민촌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학교를 옮기게 되었는데 동양인이 저 뿐이다 보니 따돌림과 구타를 당하여 생긴 멍 자국을 증거 사진으로 찍어놓은 게 몇 장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이사하자마자 칸나비스에 중독되었다. 일주일에 80시간이 넘는 노동강도에 지쳐 손쉽게 사들일수 있는 마약을 즐기다 크랙과 LSD에 빠지게 된다. 이때부터 아들의 사정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미국은 방과 후 각 가정에서 아이를 마중 나와야 하는 법이 있는데 지켜지지 않아 선생님의 제보로 아동보호센터에서 조사를 나가게 되었고, 뉴욕주 아동보호법에 따라 백현이는 마틴 루터킹 재단 산하의 아카데미에서 보호하게 되고 백현이의 어머니는 NYCATS로 강제 이송되었다. 이제 당신의 머릿속에 궁금증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프로필을 유심히 보던 내가 생소한 단어를 혼잣말처럼 읇었다.
"칸나비스? 그게 뭐지?"
"카,칸나비디올. 마리화나."
"아...."
의문문이긴 했지만, 그에게 한 질문은 아니었는데 대답이 거침없이 나와서 조금 놀랐다.
"..그럼 크랙? LSD? 이거...는?"
"크,크랙은 코,코카인의 종류이고 LSD는...그것도 마,마약이야."
마약이란 단어를 쓴 그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이때 내가 정말 원했다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어봄 직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니, 지구의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고 이러한 특별한 날을 앞둔 시간에 어두운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다고 오감이 전했다. 그래서 오늘의 대주제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종이에 인쇄된 글자를 가리켰다.
"여기 찾아가 볼까? NYCAT..S ?"
약자를 풀어 말하자면, 뉴욕 센터 오브 어딕션 트리트먼트 서비스(New York Center of Addiction Teatment Service)로 가자고 권했다. 그의 눈이 단숨에 커졌다.
"여기로?"
"어. 여기에 백현이가 온종일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
*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NYCATS으로 문의 전화를 넣었다. 변연희 라는 이름의 여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센터에 있는지 물었더니 내가 그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물어왔다. 그래서 백현이와의 만남에 대해 말해야 했고 그 후에야 그녀의 담당 주치의와 통화가 가능했다. 닥터는 우리의 사정을 듣더니 그녀에 관해 설명할 내용이 있다며 전화상으로 말하기에는 길어질 내용이니 한번 방문해 달라고 청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와 나는 약속 시간에 맞춰 업타운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평일 낮이라 한 칸의 승객이 우리를 포함해 딱 다섯명이었다. 레일과 바퀴의 접촉 소음은 훨씬 크게 들렸다. 평소보다 찢어지는 소리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NYCATS는 맨해튼 위 쪽 브롱크스에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지하 역에서 올라오자마자 공원을 가로질러 흰 빌딩으로 향했다. 우리는 긴장하고 있었다. 쭈뼛거리며 들어서서 닥터의 비서에게 언질을 주고 소파에 앉아 15분이 흘렀다. 폰의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시선을 돌려 비둘기색 벽에 드문드문 걸린 크리스마스 장식을 물끄러미 보는데 드디어 오피스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나온 흰 가운을 입은 삼십 대 후반의 여성이 밝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목에는 사진이 인쇄된 신분증이 걸려있었는데 위에 분홍 사인펜으로 그려진 울퉁불퉁한 꽃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급하게 진료해야 할 환자가 생겨서요. 전 크리스탈 왕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저는 도경수라고 해요."
닥터와 내가 악수를 할 동안 그가 자기 소개를 했다.
"반가워요. 카이 씨. 경수 씨. 제가 아직 점심을 못 먹었는데 밑의 식당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까요?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드시면 좋고요."
우리는 탁터의 제안에 따라 식당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그와 나를 재빠르게 훑고는 가운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입을 열었다.
"당신들 한국사람인가요?"
내가 그렇다고 말했다.
"그럼, 연희 씨와 같은 나라 사람이겠네요."
"네."
"연희 씨가 영어에 능하지 못해서 소통때문에 힘들어하는데 잘됐어요."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닥터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간 나는 이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에 대해 긴장하고 있었다. 가볍게 들을 수 없을 게 분명 했기에 숨 고르기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에게 담담한 눈빛을 보냈는데 다행히도 그는 나를 마주보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행동에 오히려 내가 안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