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7월 18, 2015

author's note 9






'백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야 한다.'라는 명제로 가설을 하나 세웠다. 백현이는 어린이다. 어린이는 장난감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백현이도 장난감을 좋아할 것이다. 장난감을 고르려면 토이 스토어로 가야 한다. 무엇을 좋아할지 모르니 장소는 선택의 폭이 넓은 곳으로 한다. 대형매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산 선물을 받으면 좋아할 것이다. 라는 가설은 선물을 주었을 때 좋아할 확률이 높은 물건을 주되, 확률이 높다는 의미는 빅데이터로 검증 된 순위, 다시 말하면 가장 많이 팔리는 장난감 리스트를 기반으로 한다는 꽤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합리적인 선물 찾기의 맹점이 있었으니, 우리 둘 중 아무도 백현이의 기호를 모른다는 허점이 있었고 이 허점은 가설이 가설로만 그칠 가능성과 더불어 오류를 생산할 지 모른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빽빽한 인파를 헤치고 42가의 뉴욕에서 가장 많은 장난감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게로 향했다.

들어서면서부터 압도하는 스케일의 넓은 매장에는 색색의 다양한 완구가 구비되어 있어 아이뿐 아니라 어른까지 사로잡았다. 말이 성인이지 그와 나도 아직 히어로에 열광할 나이라서 선물을 고른다는 명목으로 스스로 괘나 즐기고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모인 선물상자를 호기심 있게 바라볼 나이의 경계선이 있는 게 아닌 것처럼 그와 나를 포함한 도처의 어른들도 각기 다른 장난감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특히나 아이언맨을 좋아했다. 어디서 발견했는지 모를 아이언맨 마스크를 쓰고 스윽 옆으로 와서 얼굴을 들이댔지만,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자 비 맞은 강아지만 양 시무룩하게 마스크를 벗어 두고 왔다. 본의 아니게 이런 식으로 그를 실망하게 하거나 화나게 만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고치지 못할 천성이었기에 얼마 안 가 그의 쪽에서 무뎌지는 낌새를 보였다. 바꿔 말하면 나에게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고 해석하는 게 좋겠다.

적게는 십 달러에서 많게는 몇백 달러를 호가하는 장난감의 선명한 색깔을 보면서 시간이 갈수록 눈이 시려왔다. 게다가 얼마나 선정적이던지. 신이 나서 매장을 둘러보던 그도 언젠가부터 둘러보기만 하고 물건을 집어 들지 않았다. 나는 철저한 평범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낡은 가설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백현이가 이런 장난감을 좋아할까? 어떻게 생각해?"

나는 결국 참지 못해 그에게 물었다.

"난 왠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 같아."

어지러운 형광색 인형을 잡고 어떠냐는 표정으로 그의 반응을 기다리자, 우물쭈물하던 그는 두 팔로 뒷짐을 진 후 천천히 턱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그럴 것 같아."

이 한마디를 계기로 장난감가게를 나왔다. 번쩍이는 전광판 밑에 서서 우리는 척 봐도 알 만큼 피곤해하고 있었다. 휩쓸려 떠밀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넘쳐나는 사람들 때문이었고, 조만간 덮치지 않을까 싶을 크기로 혼을 빼는 광고가 원인이었다. 머리 위의 하늘은 건물 꼭대기로 촘촘해서 화려하나 오래 있을 자리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뉴욕에 사는 보통사람의 일상이라 한다면, 그와 나는 서로의 영역에 집중한 나머지 그들과는 동떨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내가 변했다는 걸 절감했다. 한편, 그는 눈알이 눌릴만한 힘으로 눈꺼풀을 비비고 있었는데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행위였다. 얼른 이곳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백현이의 선물을 사지 않는다면 더욱더.

서 있기 버거웠던 그곳에서 나와 우리가 향한 장소가 어디인지 당신은 짐작할 수 있겠는가? 바로 집이었다. 그와 나만의 공간. 우리는 사람이 드문드문 앉은 버스를 좋아하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부서지는 공원을 좋아하며 역으로 사람이 많지만, 규율로 선을 친 조용한 도서관을 뺄 수 없게 마음에 들어 한다. 하지만,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공간은 집이며 이 안에서는 어떤 '나'와 '그'라도 싫어하는 사람 하나 없다. 세찬 바람은 불지 않고 비와 태풍은 바깥세상의 이야기이다. 집은 항상 우리의 귀가를 기다리고, 우리는 집이야말로 유토피아라 장담했다. 나는 거칠게 운동화를 벗고 아무렇게나 가방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소파에 털썩 소리가 나게 몸을 던졌다.

익숙한 편안함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쉴 때 즈음, 그가 책상에 올려져 있던 파일을 가지고 내 옆에 앉았다. 면식이 있는 누런 파일은 백현이의 프로필이었다. 이쯤에서 프로필 일부분을 발설하자면, 이름은 변백현. 나이는 8살. 프라이머리 스쿨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에 다니다 말았다. 주된 문제는 불안정한 주변 환경이었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빈민촌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학교를 옮기게 되었는데 동양인이 저 뿐이다 보니 따돌림과 구타를 당하여 생긴 멍 자국을 증거 사진으로 찍어놓은 게 몇 장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이사하자마자 칸나비스에 중독되었다. 일주일에 80시간이 넘는 노동강도에 지쳐 손쉽게 사들일수 있는 마약을 즐기다 크랙과 LSD에 빠지게 된다. 이때부터 아들의 사정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미국은 방과 후 각 가정에서 아이를 마중 나와야 하는 법이 있는데 지켜지지 않아 선생님의 제보로 아동보호센터에서 조사를 나가게 되었고, 뉴욕주 아동보호법에 따라 백현이는 마틴 루터킹 재단 산하의 아카데미에서 보호하게 되고 백현이의 어머니는 NYCATS로 강제 이송되었다. 이제 당신의 머릿속에 궁금증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프로필을 유심히 보던 내가 생소한 단어를 혼잣말처럼 읇었다.         

"칸나비스? 그게 뭐지?"

"카,칸나비디올. 마리화나."

"아...."

의문문이긴 했지만, 그에게 한 질문은 아니었는데 대답이 거침없이 나와서 조금 놀랐다.  

"..그럼 크랙? LSD? 이거...는?"

"크,크랙은 코,코카인의 종류이고 LSD는...그것도 마,마약이야."

마약이란 단어를 쓴 그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이때 내가 정말 원했다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어봄 직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니, 지구의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고 이러한 특별한 날을 앞둔 시간에 어두운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다고 오감이 전했다. 그래서 오늘의 대주제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종이에 인쇄된 글자를 가리켰다.

"여기 찾아가 볼까? NYCAT..S ?"

약자를 풀어 말하자면, 뉴욕 센터 오브 어딕션 트리트먼트 서비스(New York Center of Addiction Teatment Service)로 가자고 권했다. 그의 눈이 단숨에 커졌다.

"여기로?"

"어. 여기에 백현이가 온종일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




*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NYCATS으로 문의 전화를 넣었다. 변연희 라는 이름의 여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센터에 있는지 물었더니 내가 그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물어왔다. 그래서 백현이와의 만남에 대해 말해야 했고 그 후에야 그녀의 담당 주치의와 통화가 가능했다. 닥터는 우리의 사정을 듣더니 그녀에 관해 설명할 내용이 있다며 전화상으로 말하기에는 길어질 내용이니 한번 방문해 달라고 청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와 나는 약속 시간에 맞춰 업타운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평일 낮이라 한 칸의 승객이 우리를 포함해 딱 다섯명이었다. 레일과 바퀴의 접촉 소음은 훨씬 크게 들렸다. 평소보다 찢어지는 소리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NYCATS는 맨해튼 위 쪽 브롱크스에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지하 역에서 올라오자마자 공원을 가로질러 흰 빌딩으로 향했다. 우리는 긴장하고 있었다. 쭈뼛거리며 들어서서 닥터의 비서에게 언질을 주고 소파에 앉아 15분이 흘렀다. 폰의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시선을 돌려 비둘기색 벽에 드문드문 걸린 크리스마스 장식을 물끄러미 보는데 드디어 오피스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나온 흰 가운을 입은 삼십 대 후반의 여성이 밝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목에는 사진이 인쇄된 신분증이 걸려있었는데 위에 분홍 사인펜으로 그려진 울퉁불퉁한 꽃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급하게 진료해야 할 환자가 생겨서요. 전 크리스탈 왕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저는 도경수라고 해요."

닥터와 내가 악수를 할 동안 그가 자기 소개를 했다.

"반가워요. 카이 씨. 경수 씨. 제가 아직 점심을 못 먹었는데 밑의 식당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까요?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드시면 좋고요."

우리는 탁터의 제안에 따라 식당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그와 나를 재빠르게 훑고는 가운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입을 열었다.

"당신들 한국사람인가요?"

내가 그렇다고 말했다.

"그럼, 연희 씨와 같은 나라 사람이겠네요."

 "네."

"연희 씨가 영어에 능하지 못해서 소통때문에 힘들어하는데 잘됐어요."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닥터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간 나는 이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에 대해 긴장하고 있었다. 가볍게 들을 수 없을 게 분명 했기에 숨 고르기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에게 담담한 눈빛을 보냈는데 다행히도 그는 나를 마주보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행동에 오히려 내가 안정을 찾았다.




토요일, 7월 04, 2015

author's note 8










방학에 돌입한 지 보름이 넘었고 일이 많아서 만나기 힘들었던 친구, 레이와 약속을 잡았다. 브런치를 해야 할 시간이었는데 친구가 좋은 곳이 있다며 차이나타운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상점과 사람으로 정신없는 거리 안으로 레이를 쫓아가는데 우뚝 선 친구의 옆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선 음식점이 있었다. 유리 벽 안은 이름 모를 물고기들과 갑각류 해산물로 가득했다. 눈이 휘둥그레지자 친구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여기 딤섬이 아주 맛있어."


 "딤섬?"


중국사람은 나라를 막론하고 점심때 딤섬 먹기를 즐긴다고 하던데 과연 늘어선 줄 대부분이 중국어를 쓰고 있었다. 줄은 천천히 줄었다. 겨우 문안에 들어서서 음식점 안을 보니 커다랗고 둥근 테이블이 10개 정도 놓여있고 위에 온갖 먹거리가 늘어져 있었다. 안내를 받고 들어가 앉은 테이블은 적어도 스무 명의 단체가 점령해도 될 자리였는데 자세히 보니 알지 못하는 그룹이 삼삼오오 나누어 앉아 자기네들끼리 이야기하며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손님들의 말소리는 음식점 안을 시끌벅적하게 했지만, 그게 매력인듯했다. 레이는 앉자마자 대나무 통을 여러 개 쌓아 들고 다니는 웨이터를 잡아 세 개를 집어 내렸다.


"먹자."


뚜껑을 여니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며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친구를 따라 하얗고 작은 딤섬을 집어 한입에 넣었다. 향긋한 바다 냄새가 코로 올라왔다.


"그래서 그 애는 어때?"


"봉사활동 다니고 있어."


이따금 문자를 주고받는 레이는 우리의 사정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몇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뭐 그런 귀찮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거야 라는 식으로 말해왔지만, 그와 룸메이트가 된 내가 여러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알게 된 후로 더는 그에 관한 부정적 의견을 내비치지 않았다.


"괜찮은 거야?"


"별일 없어."


아직까지 라는 뒷말은 삼켰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레이는 약간의 찝찝함이 남은 얼굴로 대충 끄덕이며 딤섬을 씹다가 갑자기 번뜩 내 어께를 잡았다.


"아, 맞다. 너 얘기 들었어? 그 애가 왜 헨리 교수님을 때렸는지 말이야."


"뭐? 어떻게? 왜? 왜 때렸대?"


당사자가 극구 사양하며 알리지 않았던 폭력사건의 비하인드를 레이가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궁금해 젓가락까지 손에서 놓아버렸다.


"뭐야, 몰랐던 거야? 그 애가 말 하지 않았어?"


"응. 뭔데. 말해봐."


"...고아 새끼라고 했대."


"고...아?"


고아의 뜻을 모른다고 둘러대기에는 내 표정이 드러나게 굳어있었을 거다. 그렇다는 전제하에 레이도 다르지 않은 얼굴로 천천히 끄덕였다.


"헨리 교수님의 말을 들은 애 말로는 남의 인정을 빌러 사는 고아 새끼라고 했대. 헨리 교수님이 그 애를 업신여기잖아. 예의도 없고 자꾸 대든다는 식으로 주위 학생들 선동한대. 헨리 교수가 그 애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그렇다고들 하는데 교수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다들 알면서 뭐라 하지 않더라고. 학교에서의 생활에 못 섞이는 만큼 감싸주는 사람도 없어서 항상 그렇게 혼자였다나 봐. 근데 걔 고아 맞아?"



나는 모르겠다고 하고 남은 딤섬을 입안으로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주위가 텅텅 빈 걸 보면 천재라는 거 좋지만은 않은 건가 봐."


감정을 붙이지 않은 톤으로 얘기한 레이는 다른 음식을 주문하려 손을 들었다. 다음 음식에 기대하며 싱글벙글 웃는 친구는 몇 분 전 무슨 이야기를 해주었는지 잊은 사람 같았다. 이 사건이 남의 일이 되지 못하는 입장의 나는 목구멍으로 뭐가 제대로 넘어갈 리 없었다. 가위로 자른 것처럼 식욕이 잘려나갔다. 젓가락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지 오래였고 손에 들린 물컵은 비어있었다.


"뭐야, 더 안 먹어?"


"응. 배불러."


"어제 뭐 많이 먹었냐?"


"아, 어."


둘러는 댔지만, 많이 먹기는커녕 며칠 주워 먹지도 못했다. 그가 비 오는 날 이후 지독한 감기에 걸려 간호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3일을 고열에 시달리더니 이제야 좀 기운을 차리고 집안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한번 비에 찌들었던 그를 데리고 나갔던 게 잘못이었다는 건 알지만 그래야 했다랄까 그날 이후 우리의 거리는 매우 좁아졌으니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열 때문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괴로워 보였지만, 그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마치 야밤의 외출을 미안해하지 말라는 무언의 배려 같았다. 어젯밤에는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꾸깃한 종이를 무릎에 올리고 열심히 숫자와 공식을 적어나가던 그의 머리가 내 허벅지 위로 툭 떨어졌다. 알고 보니 감기에 지쳐 잠이 든 것일 뿐이었다. 장장 16시간 뒤에 깨어나 남들이라면 세끼로 먹을 양의 음식을 한꺼번에 들이키고 기운을 차린 그는, 묻지 않았으나 물어봐서 대답한다는 투로 뜬금없지만 자연스럽게 백현이에 대해 재잘거렸다.


 백현이는 재미있고 애교가 많은 섬세한 아이라고 했다. 남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눈치를 보지만, 웃는 모습이 정말로 귀엽다고도 했다. 그래봐야 고작 두번 만난 게 다였는데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생글거리면서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백현이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한눈에 알았다. 어떻게 빨리 친해졌느냐고 물었더니, 나와 비슷하니까. 라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본인도 엄마를 기다려 본 적이 있다고. 그러니 헨리 교수님의 말은 근본적으로 틀렸다. 이로써 의심한 적은 없었지만, 잘못한 게 없다던 그날 밤의 고백은 모두가 아는 진실이 되었다.  


"너 크리스마스에 뭐 할 거야?"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 끌어올린 레이는 눈앞에 닥쳐온 크리스마스의 계획에 관해 물었다. 이렇다 할 약속이 없었던 나는 약간 망설이다 아마 그와 보내게 될 거라고 했다.


"선물은 샀어?"


"선...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친한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라는 걸. 어쩌다가 일 년 중에 가장 큰 휴일을 잊을 만큼 정신없이 보냈는지.


"너는? 넌 여차 친구한테 줄 선물 샀어? 아니, 여자친구는 생겼어?"


나는 답은 않고 되려 친구에게 물었다.


"아, 야. 그런 사람이 있으면 너랑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었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가족 만나러 갈 거야."


"중국?"


"어. 중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그다지 중요한 명절은 아니지만 다들 가족 보러들 가는 거 보니까 나도 보고 싶더라고."


가족이라. 나는 곧 내 가족을 떠올렸다. 얼굴이 닮은 형과 아버지 어머니 딱 네 명밖에 없기에 신경 쓰이고 안녕이 궁금한 사람들.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 게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친구 덕분에 크리스마스 날이 되기 전에 카드라도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깨작거리는 내 옆에서 친구는 배불러 올 때까지 먹어댔다. 계산서는 브런치라는 명분이 무색하게 100달러를 훌쩍 넘긴 합계가 나왔다. 백이라는 숫자를 보고 벙찐 날 보며 끅끅 웃던 레이가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올려두었다.


"내가 낼게."


"다음에는 내가 살게."


고개를 흔든 친구는 정말 기대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음식점을 나오자마자 헤어졌다. 방학이 되어도 친구와 나는 자신들의 삶을 사느라 바빴다. 하지만 잊지 않고 짬을 내 만나고 안부를 전한다. 친구란 건 묘해서 우리의 식습관과 닮아있다. 삼 끼 세끼 먹거리처럼 필요하고 때가 되면 반갑다. 그래서 만나면 당연하게 밥 먹었느냐고 묻고 같이 먹으러 가자고 기쁘게 제안하는 게 아닐까 싶다. 구겨진 종이와 끝이 닳아빠진 몽당연필을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는 친구도 예외는 없다. 온종일 연필을 쥐고 있어 생긴 굳은살과 저도 모르게 흑심가루를 턱에 묻힌 친구에게 온정을 머금으면 머금었지 차갑게 돌아설 건덕지는 없다. 그와 내가 함께 밥 먹은 횟수가 몇 번인가. 나는 왠지 이곳저곳이 간지러워져 애꿎은 콧등만 긁었다.


멋쩍어하며 걷는데 두르고 있던 머플러 사이로 빠져나온 입김이 흘러가는 쪽에서부터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커피콩을 바로 갈아 내린 향긋함에 끌려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사 들고 나와 걸었다. 그냥 커피 하나만 쥐었는데 훨씬 따뜻해졌다. 크리스마스는 겨우 2주밖에 넘지 않았다. 무슨 선물을 골라야 할까 고민할 수 있는 날이 겨우 14일이 전부였다. 평소 무언가에 집착이나 욕심을 보이는 보통사람이었다면 이야기가 빨랐겠지만, 알다시피 그는 뭘 원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선물인데 대놓고 묻기는 뭐하지 않은가.


버스를 타고 백현이를 보러 가면서 계속 선물을 고민하다 목적지의 정류장을 놓칠뻔했다. 서둘러 벨을 누르고 내렸는데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래 봐야 작은 섬인 맨해튼의 날씨는 겨우 몇 블럭 사이로 이렇게나 달랐다. 어쩌면 체감이 아닌 느낌의 차이일지 몰랐다. 서 있는 건물이며 걷는 사람들의 다름이 만든 허전한 기분을 그나마 손에 든 커피가 채워주고 있었다. 뭐 얼마나 떨어져 있었다고 왠지 그가 그리워졌다. 이 가볍고 갑작스러운 공간을 스푼으로 푸딩을 퍼내듯 분리해줄 수 있는 건 '그'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마틴 루터킹 아카데미로 들어가 아이에게 둘러싸여 웃는 그를 보았을 때 내 추측은 확신으로 차올랐다. 드럼통 난로가 떠올랐다. 길에서 자는 노숙자가 어딘가에서 주워온 나뭇조각을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불을 붙이면 하얗다 못해 퍼렇게 얼어붙은 거리를 녹이는 절체절명의 철제난로. 내가 서 있는 곳이 이스트 할렘의 한복판이라는 걸 잊게 해준 그의 옆에 백현이가 보였다. 


그의 말대로 백현이는 수줍게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웃음에 그림자가 섞인 걸 보았고 아마 그도 같았겠지만,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가 써주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떼지 못하고 응시하던 아이는 유리창 너머의 시선을 느끼고 문득 고개를 들어 둘러보았다. 뒤이어 나를 발견했다. 조금 어색하게 손을 들어 흔들었는데 아이는 어떠한 행동 없이 나를 무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를 기다린다고 여길 떠나지 않아요. 라던 티나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이가 엄마를 기다린다는 건 뭘까. 단언하건데 저런 표정은 아닐 것이다. 두 시간 남짓 되는 어머니의 외출을 기다려봤던 어릴 적의 나는 엄마가 오면 맛있는 밥을 해주겠지. 라며 동화책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오시면 말이 많지 않던 아이였어도, 이런 동화책을 읽었어요, 엄마. 아까보니까 나비가 텃밭 호박꽃에 앉았어요, 엄마. 뭐, 이렇게 재잘재잘할 말이 많았다. 겨우 두 시간 동안의 변화와 감정을 조잘거리느라 점심시간을 모두 허비했는데 백현이의 기다림에 비례하는 가슴 속 이야기는 얼마나 꽉 차있을까. 아이가 저렇게 타인을 볼 때, 눌러 담은 그리움이 눈동자에서 가시지 않아 나의 온 신경을 들쑤셨다. 그래도 나는 활짝 웃었다. 백현이가 무엇보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위해 울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나의 미소가 먹구름 한 점 없기를 바랐다.


"경,경수야."


백현이를 따라 날 발견한 그가 아이들의 방에서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고개를 돌려 본 그는 해맑게 나를 향해 서 있었다. 하지만 기류가 이상했는지 눈알을 위아래로 굴려 탐색에 나섰다.


"왜, 왜 그래? 무,무슨 일 있어?"


사실을 말하자면, 이 순간 그를 껴안고 싶었다. 그의 과거에 대해 쥐뿔도 모르고 묻지 않았으면서. 전날 백현이와 그가 같은 경험을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마음일지 가늠하지 못할지언정 그가 가졌던 혹은 가진 갈등과 가슴의 은신처를 어둠 대신 내가 감싸줄 수 있었으면 했다. 짓눌려 피어나지 않는 일회용 어둠말고 팔이라는 나의 날개가 지켜줄테니 고아라고 천대받은 일을 더 이상은 노여워하지 말기를. 아니, 싹 잊길.


"아니. 아, 곧 크리스마스인데 놀고 나서 같이 백현이 선물 사러 가자."


"어! 좋아."


"백현이한테는 비밀이야."


팔락팔락 고개를 끄덕인 그의 눈이 반짝였다. 이내, 내 손은 그에게 잡혔다.


"가자, 경수. 백현이랑 놀자."                          


"응."


이끌려 들어간 방 안의 아이들이 나의 등장에 환호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허그로 보여주는 아이가 많았다. 아껴놓은 초컬릿을 주머니에서 꺼내 쥐어준 여자아이는 내가 귀엽다며 옆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백현이는 주위에 인원이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지 내 옆으로 오길 꺼렸다. 그는 나와 백현이가 친해지길 바라는 것 같았는데 아이가 나를 피하는 꼴이 이날도 도저히 무리였다.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정해진 시간을 보내야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그가 백현이의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그리고는 아카데미를 나가는 내 옆으로 뛰어와 섰다. 뭐라고 했느냐고 물었더니,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초대했다고 헤헤거렸다. 셋이서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라니. 유명 장난감 스토어로 향하는 우리의 걸음이 샘솟는 기대에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