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BOOK
금요일, 1월 29, 2016
author's note 10
식당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환자들로 분주했다. 닥터를 따라 빈자리에 앉은 우리에게도 샌드위치와 주스가 올려진 식판이 놓여있었는데 둘 다 손을 대지 못했다. 나는 나대로 스멀스멀한 불안을 머릿속에 빙빙 돌리고 있었고 그는 눈치를 봤다. 닥터는 그런 우리를 보고 살며시 미소 지었다.
"긴장돼요?"
"아, 음..네."
"약물치료센터가 처음이라면 분위기가 다른 병원과 달라서 낯설 수 있죠."
솔직히 숨길 수 없었다. 환자들은 위태로워 보였고 그들을 보호하는 간호사들은 웃고 있었으나 아슬아슬했다. 무엇보다 식당 문 앞에 두 명의 풍채 좋은 가드의 시각적 압박이 무거웠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전해주는 심상치 않은 기운은 벌써 내 평온을 좀처럼 파먹고 있었다. 나는 그렇다고 단답하고 바로 말을 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맞닥뜨리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변연희 씨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다는 건은 어떤 부분인가요?"
"그 전에 당신들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그 아이를 신경 쓰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미국에 한국
인이 한둘이 아닌데 무슨 연유로 모자에게 이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해서 그래요."
닥터의 말대로 미국을 통틀어 빗대지 않더라도 뉴욕에만 한국인이 몇 명인가. 그중 아픈, 버림받은 사람이 수없이 많을 거란 건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백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지 묻는다면 '한 사람'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숫자, 일. 한 개. 그리고 한 사람. 무의 시작은 단 하나로 시작한다. 하나가 쌓여 열이 되고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모여 열 사람이 된다. 나는 백현이로부터 시작해 아이를 비롯한 나와 그, 또한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쌓고 싶었다. 닥터는 이러한 말을 듣더니 놀란 표정으로 물을 들이켜고 탁 소리 나게 테이블에 컵을 놓았다.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어요. 기껏해야 아이가 불쌍해 보여서 도와주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거든요. 충분한 대답이 되었어요. 제 기대보다 더 멋졌어요!"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닥터는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질문을 한 사정은 이래요. 여기에도 봉사자들이 오거든요. 그들은 자애로운 감정으로 환자를 대하지만, 자신의 우월함과 만족에 갇힌 경우가 많아요. 예를 즐면 '불쌍하다.' 는 말이 그래요. 알겠지만, 이 말은 제 우월을 가정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들죠. 나보다 아파 보이고 힘들어보인다 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는 뜻이에요. 이건 위험한 발상이죠. 우리는 편의상 봉사자라는 단어를 쓰는데 실제로는 이들은 헬퍼가 아닌 프렌드가 되어야 해요. 당신과 나, 모두 감정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평등하니까요. 저들의 상황에 부닥치지 않으리라 어떻게 장담하고 행동하죠? 안 그래요?"
닥터는 옆 테이블의 환자를 곁눈질하고 다시 나와 그를 번갈아 응시했다.
"줄이 위태한 외나무다리 위에 서 있다고 해서 땅에 발을 대고 있는 내가 더 잘난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 보기 좋아요. 당신들이라면 변연희 씨와 그녀 아들의 만남을 맡겨봐도 좋다
는 확신이 드네요."
"정말이요? 감사합니다."
"그 전에, 내 말을 들어주셔야 해요."
순간, 닥터의 표정은 주위의 공기를 굳혔다. 그뿐 아니라 내 입술과 그의 긴장마저도 멈췄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녀를 아들과 만나게 해주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어요. 하지만 그럴 자격이 없다면서 그녀가 거절했죠. 그리고 그녀는 마약에 손댄 일과 그럼으로써 아들을 방치한 사실에 깊은 후회를 하고 있어요. 아, 그녀의 아들에 관한 파일을 읽었다고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변연희 씨가 센터에 들어오기 전에 중독되었던 LSD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나는 딱딱하게 대답했다.
"물론 모든 마약에는 신경 자극 물질이 다수 포함되어있죠. 그런데 LSD는 다른 마약에 비해 두뇌 신경계를 강하게 자극해서 복용자는 여러 환청과 환상을 경험하게 돼요. 문제는 LSD는 즐거움만을 주지만은 않는다는 거죠. 예로, 반년 전에 센터로 들어온 환자는 3달 동안 LSD를 복용하고 재활치료를 완료한 다음 마약을 끊었는데도 본인의 사지가 찢기는 환상을 경험했어요. 그래서 다시 이곳으로 왔죠. 2개월 후 여기를 나간 그녀는 얼마안 가 집 근처 병원 중환자실에서 발견됐어요. 온몸이 피투성이였죠."
"...환상이였나요?"
"네. 나에게 뭐라고 했냐면, 조깅을 하는데 무서운 대형견이 거품을 물고 쫓아왔대요. 피하려고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갔다고 했죠. 하지만 그곳은 가계가 아니라 도로 한복판이었어요. 자동차사고 였어요."
"주..죽었나요?"
닥터는 말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럴 뻔했죠. 다행히도 살았어요. 하지만 불구가 되었죠. 내 입장에서 LSD는 가장 무서운 마약이에요. 환자에게 주사위를 던져주거든요. 행복, 슬픔, 불안, 공포, 연민, 사랑 혹은 그 의의 모든 감정을 렌덤으로 전달해요. 어제는 기뻤는데 오늘은 종식 없는 나락을 보여주죠. 게다가 환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복해서는 불시에 재발해요."
"그...변연희 씨의 치료는 어느 정도 진전된 상황인가요?"
"진전...진전이라...그런게 있다면 좋겠네요. 내 소견으로는 하루하루 근근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든 그녀의 아들과 그녀를 만나게 해주고 싶어요. 음...백연희 씨를 만나보겠어요?"
닥터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나는 그를 한 반 보고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따라와요,"
빈 그릇 옆에 숟가락을 놓은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의자에서 일어선 우리는 흰 가운을 보며 복도를 조용히 걸었다. 머지않아 닥터는 영어로 'YEONHEI BAEK'이라고 쓰인 병실 문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안에서 말을 주고받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는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원래부터 떠벌이는 아니지만 무거운 침묵을 두르고 있어 그런지 침울하게 보였다.
"괜찮아?"
내가 물으니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곧 병실 문이 활짝 열렸다. 닥터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긴장을 안고 들어간 병실의 침대 위에 여자의 등이 보였다. 어깨까지 오는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서서히 얼굴선이 드러났다. 그녀는. 그녀는, 처음 본 백현이의 어머니인 백연희 씨는 희고 작았다. 꽤 말라서 눈 주변이 좀 쾡해보이고 초점이 약간 흐리멍덩했다. 나는 그를 데리고 가까이 가서 한국어로 꾸벅 인사했다. 자기소개를 마친 우리에게 그녀가 무표정으로 살짝 턱만 끄덕였다.
"백현이 친구라고...."
그녀의 작은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백현이는 건강한가요? 보호센터에 있어요? 백...현이가 몇 살이더라...많이 컷겠죠? 어느 센터죠? 혹시 아직 할렘에 있나요?"
"네. 저희는 거기서 백현이와 친구가 됐어요."
"거기는 흑인 아이들만 있을 텐데...백현이가 따돌림이라도 받으면...어떻.."
그녀가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대며 타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말들을 중얼중얼 나지막이 읇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가능한 곧은 눈으로 보려 노력했다. 갈피를 잡지 못한 눈과 초조한 몸짓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그녀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재촉하게 했다.
"보고 싶지 않으세요?"
나는 닥터가 그녀와 나를 번갈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성급할지 몰랐으나 사전에 이제부터 물어보겠다는 눈짓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닥터 쪽의 공기는 날이 선 듯했다. 그녀는 굳었다. 가느다란 울대가 흔들리는 걸 보고 어쩌면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백현이는 보고 싶어 해요. 이제...곧 크리스마스 잖아요."
크리스마스를 연인과 보내는 게 일반적인 나라도 있겠으나 우리는 미국에 있었고 적어도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과 함께 보냈다. 버젓이 가족이 근처에 있는데 같이 하지 못하는 건 쓸쓸한 일이다.
"...아...나...나는 안 되는데...못 만나요."
"왜요?"
내 옆에서 탁한 저음이 튀어나왔다. 그의 목소리였다. 불만이 섞인 것은 비록 음색만이 아니었다. 워낙 선이 굵고 시원하게 생겨서인지 굳은 그의 표정에 겁을 먹은 그녀가 몸을 움츠렸다.
"아니..내 몰골이 말이 아니고..백현이가 이런 나를 보면 싫어할지 모르고..또...음...내가 너무 미안하,"
"그런 건 이유가 안 돼요."
그가 그녀를 단호하게 가로막았다. 드라마를 보면 이럴 때 여자가 너까짓 게 뭘 알아? 라며 쏘아붙이던데 그녀는 금방 주눅이 들어버렸다.
"다,당신 뿐이잖아요. 외로운 백현이를 품어줄 사람은 엄마라고 불릴 수 있는 당신 뿐이에요."
추호도 의심치 말라는 언행. 그녀를 직시하는 눈은 그게 진실이라고 외쳤다. 그의 두 다리가 깊은 산 속의 고목처럼 서 있는 곳에 단단히 박혀있었다. 그는 대체 이러한 기백을 어디에 숨겨두었던 걸까.
"백현이는 이미 많이 기다렸어요. 당신이 그 아이를 버렸지만 그래도 지금도 변하지 않고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그의 시선에서 필사를 느꼈다. 그녀에게 백현이를 보여주고 싶다는 간절함을 담은 말에는 힘이 깃들어있었다. 나는 마술사들이 보여주는 마술을 기술 내지는 속임수라 정의하는 편의 사람이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는 마술의 본질은 관객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마술사라는 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일지 모른다.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 말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철벽같이 방어하던 백연희 씨가 그의 말 몇 마디로 아들을 만나겠다고 했으니 그가 마술사가 아니고 뭔가라는 일종의 깨달음이 거기에 있었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무서워했는지 몰라도 병실을 나가기 전, 다시 그의 오겠다는 인사에 그녀는 살포시 미소지었다. 아마 그녀도 느꼈을테지 싶다.
닥터의 배웅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한결 가벼웠다. 가벼운 와중에 나는 즐겁고 기쁘기까지 했다.-이때는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팔불출 같게도 그가 특별히 예뻐 보여서였다.- 나는 상기된 기분으로 그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그는 소파에 누워 허공을 손가락으로 잘게 가르고 있었다. 딱 봐도 숫자를 쓰는 형상이었다. 허공이 종이라니. 하긴 하늘은 캔버스라고 하지. 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만들던 간장 닭볶음의 닭의 위치를 숟가락으로 바꿔놓았다.
"경수, 좋은 일 있어?"
등 뒤에서 그가 물었다. 나는 왜냐고 되물었다.
"노래 부르잖아. 흐~으응~흐응~ 그러잖아."
"내가? 그랬나?"
"몰랐어?"
"응."
"그럼 나만 아는 거네?"
"그런 건가?"
피식 웃으며 접시에 음식을 담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기다란 두 팔이 양쪽 어깨를 휘감으며 가슴에 교차하었다. 깜짝 놀랐다. 저절로 부동자세가 되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는 위태하게 접시와 숟가락을 든 나를 뒤에서 감싸 안고 어깨에 턱을 올려왔다.
"좋다. 나는 경수가 행복한 게 좋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유는 여러 개였다. 우선 이렇게까지 밀접하게 접촉한 게 처음이었고, 그의 심장이 내 등에 달라붙어있어 일정한 고동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며 귓가에 들리는 들숨과 날숨이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온 신경이 쏠렸기 때문이었다.
"따뜻해. 경수는 따뜻해. 잠 와."
정작 따뜻한 게 누구인지 그는 몰랐다. 나보다 체온이 훨씬 높고 키와 몸도 더 크고 팔도 길어서 내가 그의 열을 뺐고 있을 게 분명한데 내가 난로인 양 중얼거린 그는 점점 더 체중을 실어왔다. 이러다 서서 잠드는 게 아닌가 해서 손에 든 물건을 내리고 그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솎아댔다.
"잠들지 마. 밥 먹어야지."
"나 오늘 잘했지."
갑작스런 말에도 나는 긍정의 미소를 지었다.
"응. 진짜 잘했어."
사실 잘하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더 주목할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내 느낌을 풀어보자면 이렇다. 무심코 들어간 비밀정원에 오랫동안 방치된 집이 있다, 약간의 불안감이 있지만 호기심을 멈출 수 없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삐걱대는 계단을 오르니 보인 방문. 안으로 들어서니 서랍장이 보인다. 서랍은 여러개이다. 망설이다 손을 뻗어 하나를 열고 안을 뒤적인다. 손가락에 걸린 건 예쁜 진주목걸이. 지금 내가 서술한 이 날의 그에 대한 마음은 이와 똑 닮았다. 물론 모든 서랍에서 진주목걸이가 나오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어쩌면 비쩍 마른 독풀이나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작은 유리병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호기심은 멈추지 않는다. 원래 호기심이라는 게 때로 몹쓸 것이라 강제로 꽁꽁 묶으면 삐져나오기 마련이다. 억지스러운 제어는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열어볼 서랍 안의 보물을 기대해야지. 기대는 고양 감을 주고, 때로는 의지를 갖추게 하니까. 나는 정말로 그에게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경수."
"응."
"....뭐 물어봐도 돼?"
왠지 그의 목소리가 작아져 갔다. 나는 이상한 기분에 몸을 틀어 마주 보려 했으나 그는 나를 놔주지 않았다.
"뭔데?"
"경수한테 뽀뽀하고 싶어."
"...."
갑자기 머릿 속에서 심장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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